posted by 해이든 2019. 6. 1. 14:10

감독 리처드 링클레이터 


어린시절을 뜻하는 영화  '보이후드'는 2시간 45분이란 긴 상영시간이 참 지루하게 느껴졌다.


영화평론가들이 아카데미  작품상을 받은 버드맨보다 이 영화가 상을 받지못한 것을 안타까워 하는 이유를 처음엔 솔직히 이해되지 않았다.

사건없다.

감동없다.

그런데 삶은 보였다.

감독의 의도도 보였다.

12년간의 성장기를 담았다면 2시간 45분은 긴시간이 아니였다.

그저 삶은 죽지않으면 어떤 환경에서든 흐르게 되어있다는 걸 영화를 보는내내 드는 생각이었다.

그저 평범한 삶, 

그냥 최선을 다해 살뿐

생각만큼 인간은 특별하지않다.

다들 소리내고 살고있다.다들 부딪히고 헤매면서 꿈을 늘리고 줄여가며 꿈과 현실의 갭을 실감하며 살아가고 있다.


주인공 메이슨은 엄마도 삶의 단계를 밟아가며  사랑하고, 실패하면서 자신만큼 헤매고 살고 있다는 걸 느끼게 된다. 아빠는 혼자 떠돌면서 살다 여자를 만나 아이를 낳고 그저 그렇게 살아간다.

어른도 자신들처럼 헤매고, 어긋나고, 깨지면서 성숙해간다.



텍사스에 살고 있는 올리비아는 아이둘을 데리고 사는 싱글맘이다. 

아이들의 아빠 메이슨 시니어(에단 호크)는 직업도 없이, 경제적도움도 없이 음악적 예술을 담는다는 이유로 자유로운 영혼처럼 떠돌아다닌다. 

그는 그저 주말에 한번씩 아이들과 야구장에 가고, 캠핑을 가고, 친구처럼 마음을 터놓고 놀아주는 게 다였다.

물론 이것도 중요하다. 하지만 정작 경제적 문제에서는 무능하다.

싱글맘으로 자식을 키우기위해서 올리비아는 공부를 더해 제대로 된 직업을 갖고자 이사를 간다.


어린나이에 피임실패로 아이가 생겼지만 인생엔 책임이 따르는 것이다.

올리비아에게  아이들은  더불어 살아 가야할 존재로  삶을 책임지려고 애쓰지만  아빠는 그렇지 못했다.



어린 6살 메이슨주니어(엘라  콜트레인)와 누나 사만다는 엄마의 인생에 인해  낯선 도시로 이사를 계속 다녀야하는 상황에 놓이게 되고, 메이슨은 잦은 이사로 인해 친구를 제대로  만들지 못하고 남의 눈치를 많이 보는 소심한 성격으로 성장하게 된다.


남들이 어떻게 생각할지 두려워 자신이 하고 싶은 일들을 많이 못하고 사는 느낌,

남들의 시선을 신경쓰느라  자신의 생각이나 느낌을 잘 드러내지 못하는 사회성이 부족해 보였다.


이영화는 메이슨의  6살에서 대학생이 되기까지 성장기를 그려낸 것과  가족 전체의 삶을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 

엄마는 두 번의 알코올 중독자와 만나고, 재혼하고,헤어진다.

그리고 자식들이 성장하여 스스로를 책임질 나이가 되어 떠나보내게 되자  집을 좁혀 작은 곳으로 이사한다.

젊은 날은 늘리기 위해 노력했는데 이제 나이가 드니 줄이는 게 인생인가보다.

메이슨을 끝으로 

''이제 할일 다했어.이제 하고 싶은거 다 해볼거야.

내둥지에서 내보내는거야''라고 말하며 자신이 진짜인생이 시작되는 줄 알았다.

그런데 그녀는 짐을 싸 떠나는 메이슨을 보며 인생 참 공허함에 눈물을 흘린다..참 많은 일들이 있었다.

결혼하고 애낳고,이혼하고,석사학위타고,교수가 되고 최선을 다해 여기까지 왔는데  이순간에 신이나서 가는 아들을 보며 울분이 솟구치는 것이다.


''내 인생 최악의 날이야.떠날줄은 알았지만

결국 내인생은 이렇게 끝나는거야.

이제 뭐가 남았어?

난 뭔가 더 있을 줄 알았어.''


무슨 맘인지 알 것 같다. 아니 느껴진다.

누군가를 위해 살다 그 존재가 사라지는 듯한 것에서 오는 허무함, 서운함, 누군가의 퍼레이드에 발 맞추어 산것 같은 그런 느낌이 들것 같다.

나이가 들수록 열정은 무감각해지고 공허가 자리잡는다. 그건 또다른 서러움으로 고개를 든다.

인생은 도착과 출발의 연속이다.

또 인생은 평범함의 굴레속에서 굴러간다.


대학에 들어간 그 첫날 트레킹을 간 그곳에서 친구와 메이슨이 주고 받은 말처럼 순간에 나를 내맡기고 살아가는 것일 수도 있다. 

''순간을 잡으라고,

나는 그 말을 거꾸로 해야할것 같아.

이 순간이 우릴 붙잡는거지''


''시간은 영원한거지. 순간이라는 건 늘 바로 지금을 말하는거잖아''

어쨌든 인생은 계속된다.



이 감독은 독특하다

아니면 모험이나 실험정신이 강한 사람일 것이다.

실제 한 아이의 성장과정을 무려 12년동안 1년에 한번씩 15분가량의 분량을 촬영 했다는 사실이다.

영화속 주인공들이 한번도 바뀌지않고 계속 성장해가면서, 어른들도 성숙해가면서 인생 그 자체를 그대로 담아낸 다큐멘터리같은 것이다.

영화속에서 그 변화의 흐름을 다 담아낸 것이다. 유행의 변화도 음악적 흐름, 문화적 흐름과 함께 아이도 성장하고 어른도 나이들어가는 것이다.

이 영화촬영방식이 이 영화를 특별하고 대단하게 만들어 놓은 것이다.

이 감독은 비포시리즈를 제작한 그 감독이다.
posted by 해이든 2019. 3. 12. 17:38

비포 선라이즈


 

감독 리처드 링클레이터

 

영화 비포 선라이즈
 
리처드 링클레이터 감독의 비포 시리즈 중 첫 번째 작품으로 1995년에 선보인 로맨스 드라마 영화이다.
프랑스인 셀린느(줄리 델피)는 부다페스트에 사는 할머니를 만나고 프랑스 파리로 돌아가기 위해 기차를 탄다.
기차안에서 옆자리의 독일인 부부가 말다툼하자 옆으로 자리를 이동한다.
그 모습을 보던 미국인 제시(에단 호크)가 셀린느에게 말을 건다.
"왜 저러는 걸까요?"
"오래된 부부일수록 말이 안통한다죠. 남편은 아내의 바가지에, 아내는 남편의 침묵에 서로 무뎌지죠."
그 두 사람의 인연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그들은 기차 식당칸으로 옮겨 대화를 이어가게 된다.
개강을 맞아 프랑스로 돌아가는 셀린느와 비엔나에 내려야 하는 남자 제시는 서로 대화를 끊임없이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이야기가 한참 재미 있어진다. 
줄리 델피
비엔나에 도착했다. 제시는 이번에 내려야 한다. 서로에게 호기심이 생겼는데  비엔나에 내리는 상황이 맥빠지는 것이다. 
그러나 제시가 용기를 낸다.여기서 이렇게 헤어지면 평생 후회할 것 같다고 그녀에게 같이 내리자고 설득하기 시작한다.
"계속 얘기하고 싶어. 우리는 뭔가 통하는 것 같아. 같이 내려서 돌아다니는 거야. 호텔비도 없고 그냥 돌아다니는 거야."
설득당한 셀린느는 가방을 챙겨 둘은 비엔나에 같이 내린다.  이렇게 두 사람만의 비엔나 여정이 아름답게 펼쳐진다. 
레코드가게안에서

 

비엔나 골목어디에서

 두 사람은 버스와 클럽, 레스토랑, 어느 오래된 무덤, 비엔나 거리를 걷고 구경하며 비엔나의 풍경을 배경 삼아 하루의 시간 안에 자신의 이념, 꿈, 사랑, 가족에 대한 이야기, 사랑과 성적 충동 등 수많은 것을 이야기한다.

끊없는 대사로 서로를 느끼고, 동요하고, 판 튀듯이 논쟁도 하고, 사랑도 느끼며 자신들의 과거, 현재, 미래를 다 뿜어낸다.
서로 다른 가치관과 철학, 생각을 계속 질문하고 답하며 거리를 거닐었다.
그들이 나눈 대화속에서 그들이 살아온 이야기, 부모님 이야기, 할머니이야기, 사랑에 대한 생각, 꿈과 직업에 대한 이야기, 결혼에 대한 이야기들로 밤이 지나고 새벽이 지나 아침이 오도록  주어진 시간을 빈틈없이 채웠다.
그리고 그들의 대화와 함께 비엔나에 있는 사람들의 삶과 풍경, 문화, 거리표정들로 영화는 더 따스하고 평온했다. 
너무 자극적인 것도, 너무 이질적인 것도 없이 두 사람의 대화만으로 여운이 남는 영화였다. 누군가와 밤새도록 아침이 오도록 저렇게 대화를 하며 걸어본 적이 내 인생에도 있었다. 
처음 만난 낯선 여자와 남자가 우연이 인연이 되어 보낸 하루가 너무 좋았다. 비엔나가 가진 매력까지 말이다.
길거리에서 탄생춤을 추는 여인, 단어를 하나 던져주면 시를 지어줄테니 시가 마음에 들면 사례를 해달라는 낭만적인 거지, 회전바퀴위에서 내려다보이는 비엔나 다뉴느강, 그리고  두 사람의 첫키스, 레코드가게에서 두 사람이 LP판을 틀어놓고 서로 눈도 못 마주치며 듣던 음악도,공원 잔디밭에 누워 하늘의 별을 보는 두 사람의 표정도, 유람선에서 남은 시간을 아쉬워하는 그들의 애뜻한 표정, 어느 건물에서 흘려나온 연주 음악에 춤을 추다 그 모습을 눈에 사진으로 담는 모습까지.
모든 대사와 모든 풍경과 모든 거리와 음악이 너무 너무 아름다울 수 있었던 이유는 그들에게 젊음이 찬란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알까?그 젊음에 부여된 아름다움이 무엇인지.
제시는 마드리에 있는 여자친구와 여름을 보내려고 봄내내 돈을 모아 파리에 왔다. 하지만 여자친구는 자신과 단둘이 되는 걸 계속 피하는 것이다. 그리고 알았다. 자신을 원치 않는다는 것을 알고 그녀와 이별하고 이 기차를 탔다.
추억할 만한게 전혀 없다는 것이 최악의 이별이 그녀와의 이별인 셈이다. 그런 제시에게 또다른 우연이 인연으로 이어지고 있다.
제시는 좀 부정적이고 반항아같은 꼬마같다. 
" 내 인생은 추억의 모음같아. 연극리허설을 하는 것 같아. 어른이 되는"
제시는 부모의 실수로  원치 않았던  탄생이었고, 자식때문에 참고 살다가 끝내 부모는 이혼했다. 그래서 자신의 인생은 자기가 책임지고 살고 있다고 말하는 청년이다. 
그에 반해 셀린느는 "난 항상 독립적인 여자여야 한다는 압박감을 느껴. 내 인생을 남자한테 맡기고 싶진 않아."
그녀가 유독 할머니를 좋아하는 것 같다. 셀린느는 인생을 가장행렬같다고 한다. 그 이유를 할머니에 비유하자면
 할머니는 평생 남편밖에 모르고 사시는 분 같았는데 ,할머니의 고백에 의하면 평생 맘 속으로 딴 남자를 품고 그리워했다.  운명에 순응하며 산 것은 슬픈 일이라고 생각한다.
결국 모든 것이 사랑하고 사랑받기 위해 살아가는 것이 아닐까 하는 것이다.
 

공원 잔디밭에서
셀린느의 모습을 눈에 사진으로 담는 모습

제시는 사랑과 결혼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사랑은 혼자되기 두려운 두 사람의 도피같아. 사랑은 이기적이야"
"가끔 훌륭한 가장이 되는 꿈을 꾸지. 가능할 것 같아. 하지만 그런 짓이 내인생을 망칠 것 같아.관계유지에 정력을 낭비하느니 다른데 몰두하다 죽는게 더 날것같아."
 
이에 셀린느는 일에만 매달려 사랑을 준 적도 없는 사람의 삶이 얼마나 무의미한 것인지 말해준다. 
"만일 신이 있다면 우리 안엔 없을거야"
"너나 내 안엔, 우리 사이의 공간에 존재할거야.마법은 서로를 이해하려는 노력 속에 있을거야.해답은 노력속에 있어"
어쩌면 제시는 원치않은 탄생으로 또는 이혼한 부모로 인해 사랑이나 결혼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에 반해 셀린느는 자신의 삶과 사랑에 긍정적이고 열정적이다. 

 

서로의 친구에게 전화하는 척 연극하는 모습
그들은 서로의 친구에게 전화하는 척 연극하며 자신의 마음을 전달한다.
"기차에서 만난 남자와 비엔나에서 내렸어. 얘기가 잘 통하고 넘 귀여웠어. 날 몰래 바라보는 느낌이 좋아. 그가 점점 좋아져. "
이제 제시가 친구가 전화를 거는 척 연극하며 맘을 전한다.
"이건 운명적인 만남같아. 모든 것에 긍정적이지.진짜 똑똑해 열정적이고 사랑스러워.난 자신이 없어.내가 하는 말은 다 바보같아."
밤에 비엔나 건물에서 거리를 내려다보며 그들은 말한다.
"마치 꿈속에 있는 기분이야. 이 시간을 우리가 만들어낸 것 같아. 이 시간이 계획적이 아닌 것이야."
비엔나 건물위에서

그들은 전화번호 주고 서로 한 두 번 연락하다 시들해지는 걸 선택하지 않는다. 그렇게 6개월 후에 다시 비엔나에서 만나자는 약속과 함께 이별을 한다.

서정시같은 영화다. 찬찬히 그들의 대사에 집중할 수 있어야 이 영화가 아름다워질 것이다. 
비엔나 거지의 말처럼 이들의 인연은 삶에 빛이 된다. 

헤어지는 기차앞에서

모든 게 끝이 있다. 그래서 시간이 더욱 소중해지는 것이다. 이 둘에게 주어진 시간이 그랬을 것이다.
하지만 사랑은 환상적이지 않다. 복잡한 것이다. 이들은 프랑스와 미국이라는 거리가 존재한다. 
그 거리만큼 제약이 주어질 것이고, 그걸 인정안할 수가 없다. 어쩌면 처음에 제시가 셀린느를 기차에서 내리게 하려고 설득했던 말에서 먼 미래의 추억으로 인연을 담아야 할 수도 있다. 
젊음의 과거속 기차안에서 만난 남자와 보낸 하루가 여우비처럼  삶에 한번씩 나와 가슴을 적셔주는 추억으로 자리하는 것이다.  현재의 권태와 불행속에서 잠시 추억으로 탈출할 수 있게 선물이 되어줄 하루였다. 
 
(이미지 출처 :네이버 영화)
posted by 해이든 2018. 12. 27. 23:08

감독    에이슬링 월쉬

"내 인생의 전부가 이미 액자 속에 있어요."

영화 내사랑

이 영화에 난 운명이란 단어를 쓰고 싶지 않다. 영화 제목이나 영화 포스터로 낚시당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사랑! 달콤한 걸 기대했다면 맘을 접고, 인생을 담고 싶다면 보아도 될 것이다.

사람들이 각양각색의 모습으로 살아가는 이 세상, 그 세상에 오직 창문을 통해 자신의 마음을 담은 실존 인물 모드 루이스, 그녀는 실제로 캐나다 나이브 화가로  '그림 그리는 일이 스스로를 행복하게 만드는 방식'이라고 했다.

그녀는 어린 시절 장애로 인해 홈스쿨링으로 교육을 받았고, 창문을 통해 보이는 세상이 그림의 소재가 되었다.

이 영화로 인해 알게 된 '나이브 화가'란 용어는 정규 미술교육을 받지 않아 기존 미술 양식 문제에 구애되지 않고 자연과 현실의 시각적인 대상에 대하여 경건한 만큼 소박한 태도로써 건강한 리얼리즘을 예술의 기초로 삼는 아티스트를 말한다고 한다. 

모드 루이스 역

샐리 호킨스는 모드 루이스 역을  맡아 정말 내공 있는 연기력을 보여줬고, 정말 장애인 같은 그 느낌을 영화 속에서 잘 표현해 주었다. 아주  아주 소름 끼치게 말이다.

[내 사랑]이란 제목에 속아 이를 달콤한 로맨스로 착각하게 만든 것이 화날 뿐이지, 원제 그대로 가져오지 않은 것 빼고 이 영화는 꽤 괜찮은 영화이다. 에단 호크는 남편인 에버렛 루이스 역을 맡았다. 그런데 모드 루이스보다 남편인 에버렛이 내가 말하는 장애인 같았다.

괴팍하고 말도 얼마나 못되게 하는지 정말 너무 몰입해서인지 비포선셋에서 가지고 있던 에단 호크의 이미지는 산산조각 나 버릴 정도로 깨져버렸다. 

이 영화는 내게 제목처럼 애틋하지도 로맨틱하지도 않았다. 모드는 몸이 불편하다.

실존 인물 모드 루이스는 8살 때부터 턱의 발달이 멈추면서 성장이 느려졌다고 한다.  그래서 모드는 너무 말랐고, 다리도 불편하고 , 걷는 것도 이상했다. 부모가 다 돌아가시고 난 후  오빠는 그녀를 고모집에 맡겼고, 고모는 그녀를 살갑게 대하지 않았다. 

에단호크

모드는 에버렛 루이스라는 남자가 가정부를 구한다는 광고를 보고 무작정 그 작은 집에 찾아갔다.

정말 작은, 너무너무 작은 집에 사는 에버렛은 생선과 장작을 팔며 산다. 정말 딱 혼자 살만한 공간에 그녀가 잘 곳도 없는 집에 가정부가 웬 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2층도 아닌 다락방에 있는 침실에서 같이 자고, 낡디 낡은 벽과 딱 창고 같은 느낌밖에 나지 않는 곳이었다. 그는 그녀를 너무 함부로 대했다. 짜증 났다. 너무 몰입해 버린다.

그만큼 두 사람의 연기가 실제 생활처럼 착착 감겨 들어갔다. 에버렛은 고아에 웃는 얼굴을 본 적 없는 외톨이였다.

그는 몸이 불편한 이 여자를 그냥 자신보다 부족하고 모자란 사람 취급하는 정도가 아니라 무시했다.

개를 야단치는 그녀에게 "너의 위치를 알려주겠어." 했을 때는 순간 욱했다.

"이 집 서열 순위를 말해주지. 나 다음이 개와 닭이고 당신이 그다음이야."

아무리 사랑이 서툴고 고아로 외롭고 고단하게 살았더라도 충분히 상대를 적셔 주는 건 말이 아니라도 된다.

상처 받는 것에 익숙해진 사람은 상처에 대처하는 방법도 누구보다 빨리 습득하나 보다.

모드의 작은 집

집을 꾸며도 된다는 말에 그녀는 그 작은 집에 그림으로 채워 나갔고, 창문은  그녀가 세상으로 나가는 출구 같았다.

그녀는 에버렛에게 말한다. "사람들은 당신을 싫어해요. 하지만 난 좋아해요." 서로를 조금씩 보듬기 시작했지만 여전히 그들 사이엔 온기가 없어 보인다. 돈이 없어 간단히 교회에서 형식만 취하고 그렇게 둘은 부부로서 인연을 묶는다.

몸은 불편하지만 그녀의 마음은 어린애 같았다. 그녀의 창문이 그녀가 바라본 세상의 전부처럼 느껴졌다.  불편한 그녀를 위해 좀 더 다정다감한 남편이 되어주었다면. 불편한 그녀를 위해 좀 더 좋은 환경을 만들어 줬더라면 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모드 루이스가 그린 그림

실제 모드 루이스는 "손에 붓이 쥐어져 있고 눈앞에 창문만 있다면 그걸로 충분했다"라고  했을 만큼 그 작은 집 창문을 통해 그린  예쁜 그림들, 바람 한점 드나들 것 같지 않는 에버렛의 마음에 온기가 들어섰다.

모드는 그의 메마른 집과 가슴에 풍경화를 채워주었고, 에버렛은 그 작은 집이란 스케치북을 내어주었다. 그렇게 그림으로 채워진 작은 집과 에버렛과 모드는 서서히 나이 들어갔다.

샐린 호킨스

장애를 갖고 성장하면서 가족들의 구속 같은 보살핌은 그녀를 그곳에서 벗어나고 싶게 만들었고, 소외된 사람은 또 같은 소외된 사람을 알아보며 그 긴 인생의 여정을 담아내나 보다.

정서적 결핍과 세상과 차단된 마음을 가진 에버렛이 맑은 영혼을 가진 여자 모드를 만나 서로의 결핍을 메워주고 있다면 그게 사랑이라는 것을, 그 좁은 공간에서 부대끼며 산 것들이 그저 흐르는 것이 아니고 그저 시간이 지나가는 것이 아니고 축적된 감정들이라는 것이다. 

모드가 병원에 누워 있을 때 에버렛은 이렇게 말한다.

"내 아내가 보여. 처음 만났을 때부터 그랬어."자신의 운명이라는 걸 알았다는 것이었구나, 그런데 그렇게 못되게 굴었어.

"내가 왜 당신을 부족한 사람이라고 생각했을까?"이 말 또한 에버렛이 모드에게 한 말이다.

왜 모드를 부족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는지 후회하는 말이다. 그랬을 것이다.

눈에 보이는 장애를 가진 모드를 본 것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장애를 가진 에버렛이 말이다.

이 영화를 보면서 느끼는 것이 많은 사람은 아마도 눈에 보이지 않는 장애를 가지고 있는 사람은 아닐까 한다. 

그녀의 그림에는 어린아이와 같은 순수함이 있고 그녀의 그림은 밝고 생기발랄하며 예쁘다.

그녀는 죽어가며 에버렛에게 "난 사랑받았어."라고 말할 때  나도 이 두 사람을 보이는 거로만 봤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서로 사랑하며 사랑받는다는 것은 어쩌면 두 사람이 가장 잘 알 수 있는 감정인데, 표현이 서툴게 나온다 하여 오해했었다.

사랑을 불러일으키는 장면은 내게 하나도 없었다.  하지만 울컥했다. 혼자보다는 둘이 서로를 물들이며 사는 삶이 인생이고, 사랑이 어떤 형태로든 인생에 물들게  촉진제 역할을 해 주었다고 생각한다.

나중에 실존 인물인 모드 루이스의 모습을 보여주었을 때 실존인물을 그대로 갖다 놓은 듯 해 놀라웠다.

마치 장애를 가진 사람인 양 표정 짓고 행동하고 표현한 샐리 호킨스의 연기는 당연 베스트다.

부부가 살았던 그 작은 집은  그대로 복원돼 캐나다 노바스코샤 미술관에 전시되어 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