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by 해이든 2020. 1. 29. 23:02

<기생충>은 한국 영화 최초 칸 국제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받았다.

봉준호 감독과 그의 대표 간판 배우라 불리는 송강호의 만남이 또 이루어 낸 영화다.
이미 우리에게 봉준호라는 이름은 그의 작품으로 대중성과 작품성에서 인정받은 감독이다.
<괴물>, <마더>,<살인의 추억> 등 그의 영화를 거의 다 관람했다.
그러니 기대감은 이미 깔려있는데다 황금종려상까지 거머쥐었다고 하니 더더더, 기대되는 영화일 수밖에.
영화를 보고 나면 여러 갈래 의견들로 나뉘어진다. 감동적인 면이 부각되거나 스토리적 해석의 다양성, 또는 배우라는 캐릭터의 능력치, 또는 연출적인 요소 같은 것이다.


기생충이 가진 영화 제목이 강해서인지 영화를 보는 내내 기생충이란 의미를 상황상황마다 대입해 보기도 했다.
핸드폰 요금도 못내고 와이파이도 끊겨 이웃의 와이파이를 잡아보려 집안 구석구석을 돌아당기는 아들 기우와 딸 기정의 모습에서도 기생이란 단어를 떠올렸다. 주인도 모르는 사이 누군가 얄금얄금 내 영양분을 빼앗으면서 살아가는 것을 기생이라 한다면 이 상황에서 숙주는 이웃이 되는건가.

 

 


또 기생과는 다른 단어가 떠올랐다. 바로 공생!
사람은 서로간의 이익을 위해 협력하며 살아가는 존재다. 집안 일을 전혀 못하는 교연을 대신해 가정부 문광이나 충숙의 손을 빌리고 교연은 그에 대한 값을 치른다. 문광이나 충숙은 그 돈으로 생활유지를 하는 것처럼. 모두가 상리상생하면서 사회의 일원으로 살아간다. 회사도 마찬가치다.
부잣집 박 사장네 가족과 기택의 가족도 그런 공생의 관계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거짓으로 위조한 증명서를 들고 가는 그 순간부터 공생의 의미에서 조금씩 밀려나는 느낌이다.
거기다 여동생까지 위조된 학력과 문서로 가족인 걸 숨기고 추천하면서 사기에 합류시키고 가정부 문광과 운전기사를 부당한 방법으로 해고 시켜 부모를 그 자리에 취직시키는 행태가 잘못된 것이다.


만약 예를 들어 극단적으로 표현하자면 박사장네 가족을 숙주라 하고 기택의 가족을 기생이라 한다면 박사장네에게 큰 폐를 끼치는 게 아니면 별 문제가 있겠냐 싶다는 맘도 살짝 들지만 엄연한 불법이다. 더 큰 문제는 숙주가 아니라 기생 관계에 있는 이들의 치열한 밥그릇 싸움이다.
기택 가족이 문광과 서로의 약점을 쥐고 다툴 것이 아니라 서로 살기위해 조금씩 양보하고 배려했더라면 비극은 일어나지 않았을 지도 모른다. 결국 기택 가족과 문광이 아웅다웅 붕괴 되어간다.

서로의 밥자리를 지키기 위해 공생하는 법을 깨닫지 못한 것이다. 누구보다 서로의 처지를 잘 알 수 있었음에도 그들은 비극으로 치닫고 말았다.

 

문광의 남편 근세는 확실한 기생이 맞다. 집주인도 모르는 지하공간에 숨어 박사장의 삶에 피해를 주었다 할 수 있다. 문광 역시 이 지하공간을 집주인에게 비밀로 하고 남편을 기거하게 했다. 박사장 입장에서 보면 문광의 남편 근세는 엄연한 기생충이다.그것도 아들을 공포에 떨게 한 장본인이 아닌가. 집주인은 그런 것도 모르고 아들이 아프다고만 생각하고 있지 않은가.

 


우선 출연 배우들에 대해 이야기 하자면
뭐 송강호는 굳이 설명할 이유가 없을 것 같으니 패스.


천진난만하고 세상물정 모르는 부잣집 사모인 연교 , 조여정의 연기는 그녀에게 너무 딱 맞는 옷 같았다.
캐릭터를 잘 살린건지, 아니면 감독이 조여정을 염두에 두고 시나리오를 각색한 것인지 ..뭐 어떤 것이라 해도 상관없을 정도로 훌륭했다. 솔직히 봉준호 감독의 작품으로 조여정이 나오리라 예상하지 못했다. 훌륭한 선택인 것 같다. 세상물정 모르는 그녀가 있었기에 기택의 가족이 이 집에 침투할 수 있었다.
그리고 아들 기우(최우식)와 기정(박소담)의 캐릭터 역시 찰떡 남매처럼 너무 자연스러웠다.

 

기택(송강호)를 비롯하여 아내 충숙, 아들 기우, 딸 기정 네 사람은 변변한 직장도 없이 반지하방에서 살고 있는 온 가족이 백수인 집안이다.
아들 기우(최우석)가 박사장네 딸의 과외 면접을 보기위해 이 집을 방문을 하면서부터 사건이 시작된다. 기우는 온 가족을 이 집에 입성시킨다.
자신들의 한 가족인 것을 비밀에 붙히고 여동생을 박사장의 아들 미술 선생으로, 기정은 기존에 있던 운전기사를 모함하여 내쫓고 아버지를 박사장의 운전기사로 취직시키고, 가정부 문광마저 내몰고 어머니를 그 자리에 앉힌다.
박사장 집안에 과외선생,가정부, 운전기사로 네 명이 다 취직한 셈이다.

어느 날 박사장네 가족이 캠핑을 떠나고 기택 가족은 박사장네 거실에서 마치 자신의 집인냥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그 때 이 집 가정부로 있던 여자 문광, 하루 아침에 쫓겨난 그녀가 박사장네 집에 찾아온다. 자신들이 한 가족임을 들켜서는 안되는 상황에 문광의 출연이 반가울 리 없는 기택의 가족.
그런데 그녀의 출현이 그만 이 집의 숨겨진 지하공간을 드러내게 한다. 박 사장도 모르는 공간에서 가정부의 남편 근세가 숨어 살고 있었다. 기택이 박사장을 속이고 온 가족이 이 집안에 취직한 사실과 박사장 모르는 지하공간에 그녀의 남편이 빚쟁이를 피해 몇 년간 기거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가지고 대립하다 문제가 커지게 된다.


좀 독특한 소재로 호러인지 공포인지 약간 모호한 스토리다. 감독은 빛을 통해 빈부격차를 표현하려 했던 것 같다. 박사장네 집과 기택의 반지하방, 그리고 박사장네 지하공간에 빛이 다르다.
부잣집과 가난한 집의 만남을 통해 계층에 대한 갈등이 아닌 빈부격차로 인해 생기는 냄새, 그게 이 영화속에서 사건을 유발시킨다. 인간에 대한 기본적 예의에 대한 도발을 냄새로 드러낸다.
그 냄새는 가난의 냄새로 풀이된다. 가난한 자에게 가난은 치부일 수 있다. 거기다 기택은 퀴퀴한 반지하에서 살고 있다.

그 냄새를 박사장이 아내인 연교에게 말하고 있다. 지하철 냄새가 난다고. 박사장도 기택에게 대놓고 말할 수는 없다는 걸 알고 있다. 예의가 아니니까. 기택의 가족에게 같은 냄새가 난다고 하는 박사장 아들의 후각도 결국 반지하방에 같이 사는 그들의 냄새가 같기 때문이다. 살다보면 사람에게 나는 냄새가 있다. 대놓고 무례하게 냄새가 난다고 말할 수 없는 문제이다. 상당히 불쾌하고 예의가 없는 사람으로 비추어지기도 하고 서로 언짢아질 수 있는 문제이다. 상대에 대한 배려 차원의 문제나 인격의 문제로 비추어질 수도 있다. 제3자에게 말은 해도 당사자에게는 못하는 것이다. 박사장이 아내에게 기택한테 지하철 냄새가 난다고 말하는 것을 아들 기우, 딸 기정과 함께 몰래 엿듣게 되었다. 기택은 자신에게 냄새가 난다는 그 말로 수치와 모멸감을 가졌을 것이다. 거기다 연교가 자동차 뒷좌석에서 유리창문을 열 때 기택의 표정을 보면 눈치 챌 수 있다.

 

밤새 내린 폭우로 반지하방이지만 자신들의 보금자리가 물에 잠겼다. 누군가의 입에서는 비 때문에 미세먼지가 사라져서 좋겠다 하는데 누군가는 생활터전이 침식된 것이다.

빛으로, 비로 삶의 온도가 다르고 색이 다르다.
박사장은 선을 넘는 것을 싫어한다고 말한다. 각자의 선이 그어져 있는 듯, 선을 넘는 호의도, 관심도, 배려도 다 싫다는 것이다. 그건 가난한 기택에게도 마찬가지다.


감독은 이 영화의 중요한 모티브를 냄새로 설정하고 배우 송강호를 통해 열렬히 표현하게 했다. 자신에게 나는 냄새가 단순히 가난에서 오는 박탈감이 아니라 인간적 모멸감을 받아 우발적 사고를 저질렀을 것이다. 선을 넘은 것이다. 모두가.
영화'기생충'의 상승곡선은 지금도 진행 중이다.
황금종려상도 우리 영화에 처음 있는 일인데 골든글로브 외국인 영화상에 이어 아카데미 6개 부문 후보로 올랐다는 소식에 기뻤다. 봉준호 감독이 정말 사고를 제대로 치셨네. 더 좋은 소식을 기다리며 이만.

posted by 해이든 2019. 4. 13. 01:19

감독 봉 준호

살인의 추억

시간이 흘러도 몰입도가 높고 배우진들의 연기가 남달랐던 봉 준호 감독의 범죄 스릴러물이고 블랙코미디이다.

대한민국 3대 미제사건 중의 하나인 화성 연쇄살인사건을 모티브로 실제 있었던 연쇄살인사건이다.

경기도 화성 일대에서 일어난 여성 연쇄살인사건은 1986년 9월부터 처음 발생하여 1991년 4월 3일이 지나서야 끝난 미해결 사건으로 2006년부로 공소시효가 만료되었다.

화성 연쇄살인사건은 10차례 살인사건이 연쇄적으로 발생했는데 그중 마지막 3번의 사건은 모방범죄였다.

DNA 감식체계 같은 것이나 머리카락 채취 같은 과학적 수사가 도입되지 않았던 때라 부실한 과학수사체계와 열악한 치안환경의 문제로 사건을 제대로 들여다보지 못했다.

시골형사 송강호와 서울에서 내려온 김상경, 그리고 범인으로 몰렸던 세 명의 용의자의 모습도 잊히지 않는다.

일단 송강호가 맡은 형사 박두만은 사람 인상만 보면 딱 알 수 있다고 촉을 중시하는 형사였다. 자신의 촉으로 무고한 사람들을 잡아다 고문하고 자백하게 만드는 대책 없는 수사를 한다. 그와 같이 조용구(김뢰하)도 고문과 폭력을 행사하는 동료 형사이다.

살인의 추억은 두 형사의 감정적 변화와 연쇄적으로 일어나는 범인에 대한 추적, 당시 너무 미흡한 수사과정까지 리얼하게 드러나 있으며 , 용의자로 몰린 세 명의 캐릭터들도 생생하게 기억될 정도 인상 깊었다.

조연으로 가장 독보적이었던 백광 호역을 맡은 박노식은 첫 번째 용의자로 얼굴의 화상이 있고, 정신박약에 동네 바보였다.

"향숙이 향숙이 예뻤다."의 유행어를 남긴 대체 불가 연기를 보여주었다.

변태 역할을 맡은 조병순 역 (류태호), 그리고 심증은 있는데 물증을 없어 속 터지게 했던 박현규 역의 박해일, 송강호의 아내 역 곽설영(전미선)까지 캐릭터들이 생생히 살아있다.

만약 과학수사가 지금처럼 이루어졌다면 범인을 잡을 수 있지 않았을까?

정말 범인은 누굴까? 박현규란 짐작만 가지고 살인은 영원히 미궁 속에 묻혀버린다.

두 형사에게 이런 끔찍한 사건은 처음이었다.

1986년 경기도 화성군. 여인이 무참하게 강간 살해당한 후 시체로 발견 , 연이은 비슷한 수법의 강간살인사건으로 언론과 세상의 주목을 받게 되고 연쇄살인이라는 공포에 휩싸이게 된다.

특별수사본부가 설치되고, 지역 토박이 형사 박두만(송강호)과 조용구(김뢰하), 그리고 서울에서 자원해 온 서태윤(김상경)이 배치된다.

직감, 미신, 고문 등 구시대적 수사를 대표하는 시골형사인 박두만과는 달리 서태윤은 사건 서류를 꼼꼼히 검토하며 사건의 실마리를 찾아간다. 스타일이 다른 두 사람은 사사건건 맞지 않아 충돌한다.

범인은 자신의 흔적을 하나도 남기지 않는다. 피해 여성이 착용한 스타킹이나 브래지어를 이용해 결박하고 목을 조르고 팬티를 머리에 눈을 가린다.

 

여론은 들끓고, 사건은 계속 미궁 속에 빠지고 연쇄살인이 계속 일어나자 반장까지 교체된다.

폭력으로 자백을 받아내려던 두만은 자신의 방식이 잘못된 것임을 알게 된다.

수사과정에서 범인으로 몰았던 백광호가 범인이 아닌 살인 현장을 목격한 목격자임을 알게 된 두 형사는 백광호를 찾아가지만 고문당했던 일로 인해 백광호는 도망가다 기차에 치여 숨지게 된다.

유재하의 '우울한 편지'가 방송되는 날마다 여인들이 살해되었다는 것을 정황을 토대로 비 오는 날 <우울한 편지>를 틀어달라고 라디오 방송국에 엽서를 보낸 박현규의 신병을 확보한다.

세 번째 용의자 박현규는 여자들이 죽는 밤마다 라디오 음악방송에서 <우울한 편지>를 틀어달라고 한 매우 유력한 용의자로 체포하지만 증거 불충분으로 풀려난다. 서태윤은 그를 범인으로 단정 지었지만 결정적 증거가 부족했다.

서태윤은 박현규를 미행하다 놓치고 또 한 건의 여학생이 살해당하자 완전히 이성을 잃고 박현규를 철길로 끌고 가 두들겨 패며 자백을 요구한다.

4년제 대학을 졸업하고 두만의 무식한 수사를 비웃으며  가장 냉철한 면을 보였지만 계속되는 연쇄살인으로 차분하고 이성적인 서태윤도 점점 감정적으로 변해간다. 박두만은 또 서태윤과는 다르게 차분하고 이성적으로 변해간다.

박현규는 표정 변화 없이 서태윤을 조롱하고, 이성을 잃고 총으로 쏘려는 서태윤을 박두만이 말린다.

박두만은 박현규에게 자신을 똑바로 쳐다보라고 말하며 범인이라는 촉을 못 느끼자 "밥은 먹고 다니냐?"라고 묻는다.

참 심경 복잡한 말이었다.

미국에서 온 유전자 감정 소견서는 박현규와 일치하지 않는다는 내용이 적혀있고, 박현규가 범인이라는 확신을 가진  태윤은 철길 터널 속으로 도망가는 그에게 총을 쏜다.

하지만 두만의 방해로 빗나가고 현규는 유유히 터널을 빠져나간다.

 

posted by 해이든 2019. 2. 6. 18:35
택시운전사
택시운전사 영화포스터

 

독일기자 피터(토마스 크레취만)와 서울택시 운전사였던 김 사복이 함께 위협을 무릅쓰고 1980년 5.18 광주 참상을 20일부터 23일까지  잠입하여  카메라에 담아 독일에서 보도함으로써 5.18운동이 전세계에 알려지게 되었다.
당시 그는 기자생활하면서 이토록 참혹한 현장은 처음이었다고 말했다.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은 전남대 앞 학생 시위 진압을 시작으로 광주역 무차별적 진압으로 인해 부상자가 속출하게 된다. 군사독재 집권세력들이 어린 학생들을 구타하고 짓밟는 등 무자비한 폭력으로 이어진 무력진압이 학생과 시민의 분노를 샀고, 결국 시위는 점차 격화되어 무력항쟁으로 이어지게 된다. 

 

무자비한 독재권력이 폭도도 아닌 시민을 향했다. 자신들이 한 짓을 철저하게 차단하여 어둠속에 묻히기를 원할 터이지만  진실은 외신 기자에 의해 진실이 보도되는 걸 막지 못했다. 진실을 가둘 수는 없다. 세상 밖으로 나와야 하며 그 진실을 세상 밖으로 나오게 하기 위해 많은 사람들의 희생과 노력이 있었다.

이 영화로 인해 또 다시 수면위로 5.18 광주 사태를 올려 놓았고 아직도 가해자인 신군부 독재세력이었던 그들에게 사죄할 기회를 부여하고 있지만 침묵과 부정으로 일관하고 있다. 역사는 왜곡 되어서는 안된다.  사죄하는 것은 용기가 필요하고 양심이 필요하다.

송강호와 영화속 딸

 

1980년 5월 서울 택시 운전사 만섭은 딸 아이와 단둘이서 셋 방에서 살고 있다. 
그는 기사식당에서 다른 기사가 10만원을 택시비로 내고 광주에 가겠다는 외국인을 태우고 통금전에 돌아오면 된다는 말을 듣고 그 예약손님을 가로 챈다. 10만원을 받으면 밀린 월세를 낼 수 있기때문에 덥석 물고 만다. 

 

사우디에서 5년간 근로자로 일한 경력이 있어 영어를 할 줄 안다고 한다.(영어실력은 영화로 확인바람)
독일의 기자였던  위르겐 힌츠페터(일명 피터) 광주시로 향하는 모든 길이 통제되어 막혔고 연락도 두절된 상태'라는 정보를 입수하고 택시를 타고 광주로 진입하려고 한다.

 

그는 언론통제로 인해 취재가 허용되지 않았던 5.18 광주사태를 촬영하여 외국에 알리는데 기여한 일명 '푸른 눈의 목격자'이다

 


서울택시  만섭은  광주로 진입하려는데 광주입구에서 검문을 당해 '외부인 출입금지'라고 돌아가라고 한다.  만섭이 차를 돌려 서울로 돌아가려고 하자 피터는 당황하여 "노광주 노머니( No Gwangju No Moonly)"  한다. 할 수 없이 샛길을 통해  광주에 진입한다.
광주시내에 도착한 만섭은 분위기가 이상하다는 걸 느낀다. 만섭은 죄없는 사람들한테 군인들이 왜 그러냐 묻자 재식(류준열)은 "모르것어라, 우덜도 우덜한데 와 그라는지?"라 말한다. 
재식 역 류준열

 

만섭은 시외전화까지 군인들에 의해 차단되어 집에 홀로 기다리고 있을  딸아이의 걱정으로 손님을 두고 혼자 광주를 빠져 순천까지 오게 된다.

왜곡된 뉴스로 인해 아무도 광주의 참상을  모르고 있다. 손님을 광주에 두고 온 것도 그렇고, 혼자 있을 딸 아이도 걱정이 되던 만섭은 결국 딸에게 다시 전화를 걸어 "아빠가 손님을 두고왔어."광주로 다시 되돌아간다.

광주 황태술의 집

독일기자 위르겐 힌츠페터
 
되돌아 온 광주는 아비규환의 현장이었다.

무차별적으로 총으로 난사하고, 구하려는 시민들까지 사격하고,  백기를 들고 항복하는 사람들까지 총격을 가했다.

계엄군은 학생과 광주시민들에게 최류탄과 무차별적 총기난사까지 자행함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쓰러진다.
총에 맞아 쓰러져 있는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버스가 일제히 바리케이트를 치고,택시 운전기사들이 다친 사람들을 병원으로 나르게 된다. 택시들은 구급차가 되어 부상자들을 호송한다. 피터는 그 광경을 카메라에 담는다.

사복을 입고 일반시민으로 위장한 보안사 사복조장의 눈에 외신기자 피터가 발각되고,사복조장은 피터를 태운 서울택시를 모조리 잡아 들이라는 지시를 내린다.

죄도 없는 사람을 향해 무자비하게 쏘는 총탄에 광주시민 모두  군부독재세력에 더 이상 물러설 수가 없었다. 피터가 광주를 떠나 광주에서 일어나는 일을 외부에 알려 주기를 바랬고, 그들이 광주를 떠날 수 있게 도왔다.  
문재인 대통령 택시운전사 관람하러 가다

사람들이 개 끌리듯 끌려가 죽어가는 것을 두 눈으로 똑똑히 보고도 신문에 단 한 줄도 싣지 못한 기자들과 언론인들에게 피터의 직업정신과 진실을 대하는 마인드를 권하고 싶다.

만섭이 혼자된 딸아이를 두고 다시 광주로 발길을 돌린 것처럼, 진실을 알려 달라고 죽음앞에서 외친 꿈많은 대학생이었던 재식도, 총기난사로 위태로움 속에서도 부상자를 택시에 실어 병원으로  나른 광주 택시기사들도, 학생들에게 무자비하게 폭력을 가하는 군인들을 향해 시위에 동참해 준 광주시민들도 모두가 용기와 양심으로 독재에 맞섰다. 

철저하게 외부와의 연락을 차단하고 광주를 초토하시키려 했던 군사독재세력의 무자비한 총알은 광주 시민들에게 치유할 수 없는 커다란 상처를 냈다.

시민이 총칼에 죽어가는데 은폐하는 언론에게  분노한 광주 시위대에 의해  MBC등이 불태워 진다.
그들은 그냥 평범한 시민이다. 평범한 시민도 설득 못하는 정의는 정의가 아니다.
이유없는 죽음은 사람들의 분노를 사게 되어 있다. 

 

피터는 그 후 김사복을 수소문 했지만 찾지 못하고 2016년 80세의 나이로 삶을 마감했다.

는 "그의 택시를 타고 같이 변화한 대한민국을 둘러보고 싶다"는 말했지만 이루지 못하고 떠났다.  

 
위르겐 힌츠페터가 사망후 이 영화로 우리는 독일 기자 그를 알게 됐고, 그를 도왔던 서울 택시 운전사와 광주 택시기사들의 모습을 알게 되었다.

 

문재인 대통령은 독일기자 위르겐 힌츠페터의 아내 에델트라우트 브람슈테트여사와 동행하여 극장에서 이 영화를 같이 관람함으로서 화제를 모았다. 피터로 인해 5.18 광주 민주화운동의 현장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김 사복이란 택시운전사와 독일기자 위르겐 힌츠페터가 광주의 참상을 전 세계에 알림으로써 전두환을 중점으로 신군부 독재의 탄압을 세상에 내 놓을 수 있었다.
posted by 해이든 2018. 9. 16. 15:36

밀양, 빛이 빽빽하게 모인 이 곳에서 모든 것을 잃고 자신이 허락지 않은 용서를 한 하느님을 향해 보란 듯 자신의 고통을 널어놓는다.

보이는 것도 안믿는 그녀가 보이지 않는 것을 믿으려했던 건 아들을 잃고 눈물 한 방울 흘릴 수 없고 숨조차 쉬어지지 않는 고통에서  그나마 목구멍을 통해   눈물이란 걸 토해내게 해 주어서다. 원수도 용서하라는 그 뜻에 따라 아들을 빼앗아 간 살인범을 용서하려 했다. 아니 죽을 힘을 다해 용서해보려 했다. 그래서 하느님의 뜻을 믿고자 했고, 그 뜻을 전하고자 했고 힘겹게 용서란 걸 하려고 했다. 그런데 산산히 부서졌다.

 

가슴을 짓누르는 고통을 눈물로 덜어내주고 살아짐에 살아진다고 믿고 당신에게 기대려했는데 내 안에 당신을 끌여들였는데 아들을 지키지 못한 건 당신이 아니라 내 잘못이라 용서받고 싶었는데. 마음 밑바닥에서 100% 진심으로 끌어올린 건 아니지만 용서란 걸 허하여  죄를 조금이나마 덜고 싶었는데  하느님, 당신이 그 죄많은 사람을 먼저 용서하였다 한다. 난 이렇게 가슴이 짓이기듯 아픈데 아직도 찢어지는 고통에 매일이 힘든데  내가 그 살인범을 용서하지도 않았는데 갈기갈기 찢어죽이고 싶었는데  하느님이 그를 너무 쉽게 용서해 버림에  억장이 무너진다. 범인이 죄를 용서받고 평안하다고 말한다. 내 안에 있다고 믿었던 하느님의 뜻이 거짓말이었다. 당신은 처음부터 내 삶에 빛을 허하실 생각이 없던 거였고, 당신은 애초에 나의 아픔에 관심이 없었던 것이다. 죄 많은 그가 저리 쉽게 용서받고 교도소 안에서 너무 건강하고 평온한 모습으로 잘 살고 있다니,축복은 그 쪽에만 행복도 그곳에만 비추어지는 것이 당신의 뜻이라면, 죄 지은 사람에게 평온하게 살 수 있는 세상을 주는 것이 당신의 뜻이라면   이제 내가 당신에게 보여주지,죄라는 걸 열심히 펼쳐 볼테니 보라고, 당신이 볼 수 있는 곳에 햇빛 비치는 밝은 곳에서 보여줄테니 보라고....

 

슬퍼할 자격도 없는 엄마라서 스스로 가두어버렸는데 햇볕 한 줌에도 다 뜻이 있다 하여 상처받은 자신을 위로하고 사랑해준다 믿었는데 죄를 지은 범인에게 한 용서로 인해 신애의 고통에 소금을 뿌렸다.

어떤 사람은 슬프면 소리지르고 기절하고 내보낼 수 있는 눈물로 목구멍으로 토해내듯 쏟아낸다. 그런 사람을 보면 그래 다 쏟아라.  바닥까지 빡빡 긁어내 다 비우면 뭔가 다시 채워질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슬퍼도 눈물 한 방울 흘리지 못하고 몸의 구멍은 다 닫혀버린 듯 쏟아내지 않는 사람을 보면 걱정이 된다. 어찌 되는 거 아닌가, 저러다 미쳐버리는 건 아닌가, 아슬아슬하고 위험해보인다. 고여 썩지 않을까, 곪지는 않을까, 부패하지 않을까, 그러다 끝내 삶을 놓아버리지는 않을까.

 

신애가 그래보였다. 아이를 잃은 슬픔을 무엇에 빗대어 말해야 통할 수 있을까. 그 고통을 어떤 단어로 표현해야 하는가. 죽은 남편의 고향에서 자신을 아는 이 하나 없는 밀양에서 인생을 다시 처음부터 새롭게 세팅하고 싶었는데  새롭게 출발하고자 연고지 하나 없는 이곳 밀양까지 왔는데 아들마저 하늘은 빼앗아 가버렸다. 그녀의 모든 것을 앗아가버렸다. 모든 것을 잃고 그녀는 삶에 위태롭게 걸려 있다.

 

신애는 밀양에 피아노 학원을 열었다. 그는 얼마 있지도 않은 통장 잔고에도 불구하고 좋은 땅을 소개해달라며 말하고 다닌다. 남편 죽고 어린 아들을 데리고 살아가는 과부를 보며 사람들은 측은해 한다. 그녀는 그런 눈빛이 싫었다. 불행하지 않다고 말하고 싶었다. 속으로는 어찌됐든 겉으로나마 씩씩해보이고 싶었고  땅 살만큼 돈이 있다는 걸 과시하려했던 것이 아니라 남들이 자신을 불쌍하게 보지말라는 신애 나름의 발악이었다. 서울 여자가 시골로 그것도 죽은 남편의 고향으로 돌아와 아이와 살려고 했던 건 그녀는 도시에서 아이와 살 경제적 여력도 되지 않았고 남편의 배신도 남편의 죽음으로 젊은 나이에 혼자도 된 자신을 향한 동정의 눈빛에서 자유롭게 벗어나 아는 이 하나 없는 남편의 고향에서 새롭게 출발하고 싶었다.

 

사람들은 남의 불행에 말들이 많다. 생각해준답시고 위로해준답시고 건네는 말이 누군가에게는 무시하는 사람들보다 무관심한 사람들보다 더 아프게 다가와 꽂힌다. 위로의 말도 불쌍하게 보는 것도 다 싫다. 남에게 초라하게 보여지는 자신을 감당못하는 사람도 있다.

그래서 아무도 모르게 밀양으로 내려와버렸다. 집을 구한 것도 아니고 그저 아들 준과 함께 무작정 밀양을 향해 내려왔다. 자신의 과거를 모르는 곳으로 자신의 불행을 모르는 곳으로 죽은 남편의 고향이라는 연줄 하나 가지고 남편에게 사랑받았던 여자로 남편을 못 잊고 사랑하는 여자로 여겨지게 자신을 쉽게 보지 않게 새로운 삶을 만들고 싶었다. 하지만 남편도 없이 돈도 없이 아들 데리고 사는 과부로 보이기 싫었다. 돈이라도 있어 초라하지 않다고 가려보려 거짓말을 했다. 땅에 투자할 만큼 돈을 가지고 있는 여자처럼 있는 척 했던 것이다. 땅을 보러 다니는 자신의 행동이 아들의 삶을 앗아가버렸다.

돈을 노린 유괴범이 아들을 유괴한 것이다. 아들을 유괴한 남자에게 얼마 남지 않은 통장 잔고를 다 찾아 넘겨주었다. 유괴범은 얼마되지 않은 돈 때문에 신애에게 전화로 화를 내고 있다.

가진 게 그게 다라고, 있는 척 하려고 거짓말 한 거다. 남편 연금으로 빚 갚고 여기 집 구하고 남은 게 그거뿐이다. 자신을 결국 다 드러내고 동정을 구했다. 동정으로부터 벗어나려 했는데 도로 동정을 구한다. 아들을 돌려달라고..

아들 준은 끝내 살아서 돌아오지 않았다. 아들의 시체가 발견된 날도 햇볕 좋은 날이었다. 하늘은 너무 맑고 밝은 빛을 내려주고 있었다. 그녀는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한 것이지 자신을 현실 밖으로 보내버린 것인지 아들의 시체 앞에서도 아들의 장례식에서도 눈물 한방울 흘리지 않았다. 못했다. 못한 것이었다. 아들의 죽음도, 자신도 스스로 박제시켜버린 듯 움직이지 않는 고체처럼 가두어버렸다.

이제 정말 남은 것이 아무것도 없는 신애, 살아갈 수 있을까. 아니 다 잃은 마당에 살아가고 싶을까. 살아야 할 이유가 있을까. 아들의 숨결을 느끼기 위해 아들 흉내를 내며 아들의 음성 테이프를 들으며.

 

난 아들 잃은 엄마 신애만 보였다. 신애를 향한 종찬의 사랑은 보이지 않았다. 신애 역시 종찬에 대한 감정은 없었다. 그녀에게 빛 한줌이 들어서지 않았다. 다른 사람과 어떻게든 어울려 보내지만 그녀는 누군가 받쳐주지 않으며 금방 쓰러질 사람처럼 보였다. 종찬(송강호)은 그런 그녀 뒤를 그림자처럼 따라다녔다. 유괴범과 마주할 때도,  아들의 사망신고를 하러 간 날도, 길에서 짓누르는 고통으로 가슴을 움켜잡을  때도,교회에서 처음으로 목구멍 밖으로 소리내어 통곡할 때도, 그녀가 종교에 의지해 교회를 다닐때도, 교도소에 유괴범을 용서하겠다고 찾아갈 때도, 충격으로 쓰러져 병원에 입원했을 때도,그녀 옆에 항상 있었다. 신애가 신경쓰든 말든.

고통스러워도 살아진다고 하는 삶, 아들과 살아보려는 밀양에서 아들이 죽었다. 모든 걸 잃은 여자, 그녀의 삶에 앞으로 무얼 담을 수 있을까. 어떤 말이 위로가 될까. 하늘을 노려보며 화내는 신애 온전하다 말할 수 없었다. 종교에 기대어 안보이는 것에 기대어 숨으려 헸는데  하느님의 뜻을 전하러 교도소로 살해범을 면회간 날, 그녀는 충격으로  쓰러지고 만다. 빛이 그곳에만 비추듯 범인은 너무 평안해 보였다. 정작 고통속에 살아야 할 자가 하느님이 용서해주어 평온을 찾았다고 말한다. 하느님의 무슨 권리로  아들을 죽인 범인을 용서하느냐고.

어떻게 해야 신애가 살수 있을까, 사람을 살게 하거나 고통으로부터 버티게 하는 것들이 있다. 그 중에 사랑하는 마음도 있고 그 중에 미워하는 마음도 있다. 아들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살려고 했다면 지금 신애는 하느님을 미워하며 버티고 있다. 모든 것을 빼앗가 가는 것도 모잘라 살인자를 용서하고 그가 사는 세상을 지옥이 아닌 천국을 만들어 놓았다. 자신의 삶을 지옥으로 만든 하느님이 죄인의 삶에 빛을 비추어주었다. 그래서 하느님이 보란듯이 죄를 짓는 사람으로 살아보려고 했다. 죄 짓고도 저리 쉽게 용서받고 행복해지는 것이 하늘의 뜻이라면 ....그래 발악이다. 아들을 잃은 엄마의 혹독한 걸음이다.

 

땅에 발붙이고 있는 이상, 하늘을 마주해야 한다. 끊어질 것 같은 고통이 있음에도 삶은 계속된다. 아침은 어김없이 오고 밤 역시 어김없이 온다. 사는 것도 사랑하는 것도 또한 죽는 것도. 

사람 사는 곳이라면 다 똑같다는 종찬의 말처럼 사람 사는 곳이라면 사람으로 인한 상처와 치유가 있고, 빛과 그림자가 있다.

솔직히 힘들어하는 신애만 보여 종찬의 서툰 표현방식이 탐탁치는 않았다. 신애와 종찬이 어울린다는 생각도 들지 않았다.  그러나 안다. 그림자처럼 옆에 있어주는 사랑이 흔하지 않다는 걸, 저런 사랑이 요즘 같은 세상에 많지 않다는 걸....

밀양이라는 도시, 연기보다 더 자연스러운 이웃과 배경으로 만들어진 영화. 2007년에 개봉한 이창동 감독의 영화로 한국 배우 최초로 전도연이 칸 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작품이다. 이 영화는 종찬이 신애를 뒤에서 묵묵히 있어줬듯이 송강호가 전도연이 빛나게 해준 면이 있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