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by 해이든 2019. 7. 20. 00:36

사랑의 기적

감독 페니 마샬

사랑의 기적

 

실화를 근거로 하고 있다.

1969년 브룽크스 베인브리지 병원, 그 해 여름은 특별했다.

15명의 환자들과 관리인인 간호사, 의사들에게 기적의 계절이라 말할 정도의 재탄생이 있었다.

오직 연구만 해오던 세이어 박사(로빈 윌리엄스)가 베인브리지 병원에서 만성질환자를 진료하게 된다.

그들은 특이한 정신분열증,신경장애, 히스테리 등으로 마지막 치료 뒤에 아무런 변화를 보이지 않는 환자들 뿐이다.

만성질환자는 오직 음식과 물만 주면 된다는 남자 간호사의 말처럼 말 그대로 몸만 있을 뿐 정신은 죽어있는, 실체가 없는 귀신같았다.

어느 날, 세이어 박사는 만성질환 환자가 떨어지는 안경을 잡아내는 걸 보고 환자들의 어떤 행동에 반응하는 걸 발견한다.

공을 받아 치고,걷지도 못하는 환자가 간호사를 의지해 걷는다거나, 음악에 반응했다. 그들은 몇십 년 동안이나 움직이지도 못했다.

세이어는 그들이 공의 의지를 빌렸다고 표현했다.

다른 의사는 그저 반사 작용에 지나지 않는다 했지만 환자의 이름을 부르거나 음악을 들려주거나 인간적인 접촉을 갖는 것 등으로 인해 그들의 내면이 살아있다고 확신한 세이어는 환자들에 대해 집중적으로 연구하기 시작한다.

 

그들은 여기 오기 수 년 전에 뇌염에 걸렸다가 살아난 뇌염 환자들이었다. 뇌염을 앓은 후, 뇌염으로 인한 혼수상태인 것이다.

대다수 어린 아이였던 때 감염이 뇌에 얼마나 큰 손상을 입혔는지, 세월이 흐르면서 이 기괴한 신경증상이 나타나기 전까지 몰랐다.

지금은 혼자 입지도 먹지도 말도 못 했다.

 

세이어는 파킨슨병 환자를 치료하기 위해 사용한 엘 도파라는 신약에 관심을 가졌다.

이 약을 뇌염 환자에게 투약해 보기로 결정한다.

엘 도파라는 신약의 개발로 파킨슨병 환자가 정상적인 삶을 살게 되었으니, 비슷한 뇌염환자에게 투약할 수 있도록 병원 측에 요구한다.

병원 측은 부작용을 염려해 레너드에게만 투약해보라고 허락해 준다.

세이어 박사는 환자 중에 레너드(로버트 드 니로)를 주의 깊게 봤다.

그는 11살에 손에 떨리기 시작하면서 더 이상 글씨를 쓸 수 없게 되면서 천천히 나빠졌다.

이 세상 사람이 아닌 것처럼, 그의 정신은 사라졌다. 30년이나 잠들어 있었던 것이다.

엘 도파를 가족의 동의와 서명을 받고 레너드에게 복용하기로 한다. 세이어는 레너드 어머니에게 그를 다시 이 세상으로 데려오기 위해서라고 설명했다.

엘 도파 약을 복용한 레너드에게 기적이 일어났다.

깨어나 말도 하고, 글도 읽고, 맘대로 움직일 수 있게 된 것, 정상적으로 돌아왔다.

레너드는 아주 오랜 시간 동안 사라져 있다 이제 돌아왔다. 그는 처음엔 잃어버린 30년을 슬퍼했으나 이내 상황을 이해했다.

 

그는 이제 세상 밖으로 나가려 하지만 병원은 그를 깨워놓고는 새장에 가둬 버린 채 내보내 주지 않자 레너드는 분노를 표출한다.

그는 부활한 게 아니라 세이어가 준 약을 복용한 것이고, 그 약의 기적 같은 효능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경련에 손을 떨고, 머리를 흔들고, 말을 더듬다 난폭해지기까지 했다.

약 효과가 떨어지고 부작용이 생겼다.

세이어는 레너드를 포기하지 않고 투약량을 조절하면서 계속 실험해 갈 수 있게 해달라고 하고, 레너드도 자신을 포기하지 말라고 한다.

레너드의 상태는 점점 악화되고 자신이 흉측해지고 있다.

더 이상 자신을 통제하는 게 자신인지 경련들인지 알지도 못하겠다는 레너드를 바라보며 세이어 박사의 시름도 깊어진다.

레너드 어머니는 투약을 멈추라고 한다. 아들이 고통스러워하니 멈추라고.

하지만 세이어 박사는 그는 싸우고 있는 중이라고 말하자 어머니는 그 애는 지고 있다고 대답한다.

모든 것이 원래대로 돌아갔다. 레너드를 시작으로 모든 환자가 다시 실체 없는 귀신으로 만성질환자로 돌아갔다.

세이어는 자신이 그들에게 삶을 줬다가 다시 빼앗아 가는 사람이 된 것에 고통스러워했다.

 

 

과학이라는 이름 뒤에 숨어 약 때문에 실패했다고도 단순히 병이 재발했다고도 말할 수도 있다.

환자들이 잃어버린 세월을 따라잡는데 실패했다고 말할 수도.

그러나 진실은 뭘 잘못했는지 우린 모른다는 겁니다. 마찬가지로 우린 뭘 잘했는지도 모릅니다.

우리가 아는 건 약을 통한 해결의 길이 막혀도 또 다른 깨어남이 발생하리라는 것,

인간의 정신은 어떤 약보다도 강하다는 것,

그리고 그 정신은 다음과 같은 것들과 함께 커간다는 사실, 일과 놀이와 우정과 가족

중요한 건 이런 것들이다. 우리가 잊고 지내왔던 아주 단순한 것들

<말콤 세이어 박사의 강연 중에서>

 

 

 

posted by 해이든 2019. 4. 18. 23:13

감독 피터 위어(Peter Weir)

죽은 시인의 사회

 

대학입시교육이 학생들의 가슴에도 부모의 가슴에서도 마음을 빼내 버린 것 같다. 
스펙이 사람을 대변하는 카드가 되고, 오직 명문대를 향한 그들의 질주는 자신의 인생에서 즐거움을 빼내고 없는 것 같다. 그러나, 명문대를 나와도 그들의 질주는 끝나지가 않는다. 고학력, 넘치는 스펙을 가지고도 그들의 삶이 행복하지 않다면 무엇이 잘못된 것일까?
나는 그런 질문을 던지고 나서 답을 구하고자 할 때 영화 한편을 떠올렸다.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이다. 
 
영화의 배경은 1959년 미국의 명문 웰튼 아카데미다. 역사와  전통과 규율로 대학입시에만 전념하는 교육을 통해 명문대의 높은 합격률를 자랑한다.
자식에 대한 높은 교육열을 올리는 부모들의 희망이 된다. 그들은 그렇게 희생을 덮어서라도 자식들에게 투자를 아끼지 않는다.
새학기가 시작되어 이 학교를 졸업한 출신 존 키팅(로빈 윌리엄스)이 새 영어교사로 부임되어 오고, 소심하고 내성적인 학생 토드 앤더슨(에단호크)도 이 학교로 새로 전학을 온다. 그는 닐 페리(로버트 숀 레오나드)와 기숙사 한 방에 배정된다.
대학입시를 위한 교사들과 학부모, 학생들의 표정에서 보이는 엄숙하고 딱딱하고 경직되어 있는 분위기가 학교 분위기를 자아낸다.
공부를 위해 과외활동을 하지 못하게 하는 닐 페리의 아버지, 말대꾸도 거역도 할 수 없게 만드는 그의 아버지는 닐이 의대를 가게 하는 게 목적이다. 과연 그 목표가 자신을 위한 목표이지 자식인 닐 페리의 목표는 아닌 것 같다. 하지만  시키는 대로 해야만 하는 아버지의 무장된 표정에 아무말도 할 수 없다. 존 키팅이 말한 지옥학교에서 살아남았다는 말이 무엇인지 알게 만든다.

 

'카르페 티엠'

 
# 존 키팅의 첫 수업
그는 앞문으로 휘파람을 불며 들어오더니 뒷문으로 나간다. 그리고 학생들을 따라 오라고 말한다.
그리고 100여년 전 선배들의 단체 사진앞에서 '카르페 디엠'을 말한다.
라틴말로 표현하자면 '현재를 즐겨라. 
우리는 반드시 죽기 때문이다. 그래서 현재를 즐기라고 말이다.
우린 요즘 존 키팅의 외침 '카르페 디엠'을 삶에 받아들이며  소확행, 워라밸이라는 삶을 만들어가는 사람들이 많다. 
존 키팅은 자신을 캡틴이라 불러도 된다고 말한다. 내가 너희가 타고 갈 배를 운전할 테니 너희들은 즐겨라고 말하는 듯 했다. 내 해석이 맞는지는 모르겠지만 역시 캡틴이 티쳐보다는 자유로워 보인다.
 

"너 또한 한 편의 시가 된다는 것"

 
# 존 키팅의  수업
 
그는 서문에 있는 문장을 학생에게 읽게 한다. 그리고 '쓰레기'라고  책을 찢어 버리라 한다. 한 장이 아닌 서문 전체를 찢어 버리라고 한다.
아이들은 선뜻 찢지 못한다. 그동안의 교사들과 너무 다른 수업방식을 가진 존 키팅에 어리둥절 하다.  "인류는 열정으로 가득 차 있어. 의학, 볍률, 경제, 기술따위는 삶을 유지하는 데 필요하다. 하지만 시와 미, 낭만, 사랑은 삶의 목적인거야. 아름다움을 어디서 찾을까 ?네가 거기에 있다는 것! 생명과 존재가 있다는 것!너 또한 한 편의 시가 된다는 것."
그는 운율이나 운조가 아닌 말과 언어의 맛을 배우게 하고, 말과 언어는 세상을 바꿔 놓을 수 있다고 말한다. 
이 틀에 박힌 고정관념을 빼 주고 내면을 끄집어 내 주려고 한다. 
그는 우리나라의 교육으로 돌려 말하면 시를 낭송하고 감상하고 자신의 정서를 끌어내는 것은 입시위주의 교육에서 도움이 안된다. 그 시가 가지고 있는 문법과 운율과 저자의 철학에만 초점을 맞춘 교육방식을 향해 저돌적인 자세를 가르쳐 주고 있다. 
시를 가슴에 담아야 하는데 우리는 머리에 담는다. 시속에 담긴 저자의 의도와 문법만을 배운다. 
시험을 위한 공부를 했지, 인생을 위한 공부를 못한 거다. 그게 맞는건지 틀린건지도 재볼 여력도 없이 그저 달렸던 거다. 그러는 건지 알았다. 
분명히 대학입시 위주의 교육만을 하는 요구하는 학교 측에서는 그의 존재는 이물질이라 생각할 것이다.

 

내가 이 위에 선 이유는 사물을 다른 각도에서 보려고 하는 거야
책상위에 올라선 캡틴
# 수업시간
그는 교탁위에 올라선다.
그리고 묻는다. 내가 이 위에 올라 선 이유가 무엇이냐고? 사물을 다른 각도에서 보려는 것이라고 말한다.
"이 위에서 보면 세상이 무척 다르게 보이지. 어떤 사실을 안다고 생각할 땐 그것을 다른 시각에서 봐라. 틀리고 바보같은 일일 지라도 시도를 해봐야 해.책을 읽을 때 저자의 생각만 고려하지 말고 너희들의 생각도 고려해 보도록 해."

 

한창 꿈꿀 아이들이 어른들이 짜놓은 틀에 박혀 자신의 의지대로 자신을 조정해 나가지 못하는 삶이 보였기에 그는 자신이 선장이 되어 그 아이들의 시선을 가장자리에서 돌려놓고 싶었을 것이다. 내가 보는 각도에 따라 많은 것이 달라진다는 것을 말이다. 그러니, 어른들의 벽이 높아도 시도해 보라고, 각자 자신의 내면의 소리를 끄집어 내고 찾아서 부딪히라고 말이다. 
잘못된 교육방식을 통해 우리는 어쩌면 얻는 것보다 잃은 것이 더 많은 줄 모른다. 
존키팅은 아이들과 야외 수업도 하고, 축구도 하면서 그들의 얼굴을 무표정에서 꿈많고 장난 많은 십대들의 표정으로 바꾸어 가고 있었다. 아이들도 존 키팅의수업을 웃으며 즐거워 했다.
 입시위주의 교육에서 벗어나 키팅 선생의 가르침을 통해 인생의 가치를 깨닫게 된다. 

 

존 키팅의 수업
타인의 인정을 받는 것도 중요하지만 자신의 신념의 독특함을 믿어야 한다.
 
# 수업 
존 키팅은 아이들에게 걸으라고 한다. 처음에는 각자 제멋대로 걷기 시작하던 아이들이 결국 서로 발을 맞추어 걸었다. 그리고 지켜보던 아이들은 아이들의 걸음걸이에 맞춰 박수까지 쳤다. 무엇을 가르치려고 이런 동작들을 하게 할까? 궁금해진다. 그는 일체감의 중요성을 보려주려고 한거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관계속에서 자신도 모르게 맞추어 가며 산다. 당연히 명문대를 가라는 부모말에 싫어도 따라가고, 누군가 공부를 하면 또 따라 간다. 
그런데 존 키팅은 그러지 말라는 것 같다. 획일화의 위험성을 가르쳐 주기 위한 수업이었다. 우린 인간은 개성이 있다. 자신만의 독특함이, 또는 자신만의 선택이 자신의 성공이든 실패를 가져올 것이다. 똑같은 공장에서 찍어나오는 상품이 아니다.
자신만의 신념을 가지고 개성을 살리라는 것이다. 부모들이 찍어내는 의사말고 연극에 행복을 찾고 재능이 있다면 그 길을 선택해 가고, 작가가 되고 싶으면 작가가 되는 자신의 특기를 살려서 자신의 마음대로 자신의 인생을선택하라는 그의 가르침이었다.
즉  걷고 싶은 대로 걸으라는 것이다. 전통에 맞설 수 있는 의지를 용기를 가져야만 자신의 삶을 얻어낼 수 있는 것이라고 말이다.
하지만 교장은 그의 비전통방식의 교육이 맘에 들지 않는다. 이 곳 교육과정은 정해져있고, 이미 훌륭하다는 것도 명문대 합격률로 증명되었는데 존 키팅이 그 방식을 흔들고 아이들을 흔든다고 생각한다. 
교육의 목적은 사색하는 걸 가르치는 거라고 믿는다.
18살의 에단호크
전통에 도전하여 학교의 교육방식을 탈피하여 획일화의 위험성을 강조하며 아이들을 사고할 수 있는 길로 인도하는 것이 교육의 목적이고 자신이 가르치고자 하는 방식이라고 교장에게 말한다. 
전통적인 교육과 비전통적인 교육이 충돌한다. 
 
학생들의 사색을 가두어야 하는 교육과는 달리 존 커팅은 학생들의 사색을 끄집어 내는 탈교육을 시도한다. 
1950년대 남자 사립학교 웰튼을 배경으로 하여 입시 위주의 공부만을 위해 다른 모든 활동을 잠재워야 하는 시간싸움만 강조하는 삶에 가치는 없다. 그저 명문대를 향한 발걸음만 재촉한다. 선생도 부모도 학생도 말이다.
존 키팅의 교육으로 인해 아이들은 좀 더 자신의 꿈을 향해 도전한다. 
 
닐 페리는 하고 싶던 연극 무대에 서고, 사실을 알게 된 아버지는 강경하게 나온다. 그러나 멈출 수 없었던 닐 페리는 연극공연무대에 올라 멋진 무대를 만들어 내고 자신이 너무 잘한다는 걸 알게 되고 희열을 느낀다. 닐 페리는 아버지에게 사육되는 자식같았을 것이다.
 
벗어나지도 아버지를 설득할 수도 없다는 걸 인지한 건지, 자신이 하고 싶은 것과 부모가 바라는 것이 충돌하고, 자신은 거역할 수 없는 벽앞에서 자살을 선택해버리는 슬픈 상황. 
이 사건은 아버지의 반성도 교장의 반성도 학교의 잘못도 아닌 오직 존 키팅의 교육방식에 의해 벌어진 비극적인 상황으로 몰고 가게 된다. 부모와 교장의 단합으로 학생들은 퇴학을 당하지 않아야 하고, 오로지 존 키팅을 내쫓게 된다.

 오 마이 캡틴!

개혁과 도전은 그렇게 존 키팅 한 사람을 처단하는 것으로 다시 전통적인 교육방식에 아이들의 양심도 꿈도 묶어 버렸다. 토드 앤더슨은 소심하고 용기가 부족했던 자신의 내면을 끄집어 내주고, 야성을 일깨워 준 캡틴을 희생양으로 몰아버린 상황에 죄책감과 미안함으로 마음이 아프다. 학생들은 문을 열고 나가는 존 키팅을 향해 책상에 올라서며 마이 캡틴을 외친다. 교장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학생들은 책상에 올라서며 마이 캡틴을 부른다. 눈물 나는 장면이며, 가슴 아픈 장면이었다

학생들과 소통하려고 하고, 억압된 내면을 끄집어 현재를 즐기게 하려는 그의 교육방식은 아이들을 대신해 물러나야 했다. 그러나 아이들의 가슴에는 그는 영원한 캡틴으로 남을 것이다. 참교육이 무엇인지를 우리에게 보여주었으나, 우리는 아직도 애들을 틀에 끼어놓고 쪼이고 있다. 슬픈 현실이다. 캡틴 같은 스승들이 교실을 가득 채웠으면 한다. 

캡틴의 가르침대로 자기 걸음을 걸어갔으면 좋겠다.
그리고 '카르페 디엠'..현재를 즐기자.  불투명한 내일을 위해 투명한 오늘을 고통스럽게 가두지 말자.
 
18살이었던 에단 호크와 로빈 윌리엄스의  첫만남은 이렇게 이 영화에서 교사와 학생으로 시작되었다. 
이 영화를 계기로 로빈 윌리엄스의 추천으로 에단호크는 에이전시 계약을 했다. 한솥밥을 먹게 된 것이다. 이 영화로  1990년 아카데미 각본상을 받는다.

 

posted by 해이든 2019. 2. 12. 15:23
굿 윌 헌팅
감독 구스 반 산트

 

어느 날, 맘이 정말 편안한 날, 몸의 움직임 없이 늘어지고 싶은 날, 멘토같은 편안한 인상으로 아빠같은 미소로 맞이할 것 같은 그 한 사람이 출연하는 작품으로 24시간을 장식하고 싶다. '로빈 윌리엄스'

난 '로빈 윌리엄'가 출연한 작품으로만 그를 가슴에 가두고 싶다. 그의 개인적인 삶으로 들어가면 왠지 가슴이 시려서 위로를 못 받을 것 같기 때문이다. 그는 유독 상복이 없다. 그래서 많이 안타깝다.

그에게 상을 안긴 작품 <굿 윌 헌팅>을 소개할까 한다.

1998년 제 70회 아카데미 시상식 9개 부문에 노미네이트 된 작품으로 처음으로 로빈 윌리엄스에게 최우수 남우 조연상을 안긴다. 그리고 맷 데이먼과 벤 애플렉이 공동으로 각본을 써서 최우수 각본상에 수상한 작품이다. 
그에게 오스카의 영광을 안긴 작품이다. 무려 1998년에 개봉한 영화임에도 명작의 빛은 누래지지 않았다.

 

영화 굿 윌 헌팅

<굿 윌 헌팅>이란 영화에서 그는 심리상담 교수로 나온다. 이름은 숀 맥과이어, <죽은 시인의 사회>에서도 명문고 영어 선생님으로나와 많은 이에게 연기의 내공을 보여준 그였다. 어쩌면 이 두 작품으로 이미 내 마음속의 멘토나 캡틴으로 자리잡은 줄도 모르겠다.

청소부인 윌역에는 맷 데이먼이 맡아 열연한다. 맷 데이먼은 벤 애플렉과 함께 직접 대본도 쓰고 또 같이 출연도 하여 남우주연상 후보에 오르기도 하였으며, 하버드대에 영어영문학을 전공한 인물이다. 

세계적인 공과대학  MIT대학에서 청소부로 일하고 있는 윌은 복도를 청소하다 칠판에 적혀있는 수학 문제를 보고 풀어 적는다. 수학분야의 노벨상이라 할 수 있는 수리 조합학의 수훈상을 받은 램보교수가 낸 문제이다.  

문제 풀고 있는 윌
램보교수(스텔란 스카스가드)와 학생들은 칠판에 문제를 푼 사람이 누군지 궁금하다. 이번엔 자신이 증명하는데 2년이나 걸린 문제를 칠판에  적어 놓는다. 그러던 중 복도에서 문제를 풀고 있는 윌을 발견하고,칠판에 그가 적어 놓은 답을 보고 그의 천재성에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그 묘령의 수학천재가 청소부 21살의 청년 윌이었다.
 

윌은 수많은 범죄이력을 가지고 있는 문제아로 지금은 경찰관 폭행사건으로 구속되어 있는 상태였다. 램보 교수는 두 가지 조건을 제시하고 자신의 보호 아래 그를 꺼내 준다. 

첫째는 매주 자신을 만나 수리조합과 유한 수학을 공부하는 조건이고, 둘째는 정신과 치료를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윌을 꺼내면서 램보에게 치료에 대한 보고서를 제출할 의무가 생겼기 때문이다.

은 천재다. 사진같은 기억력을 가지고 있다. 누구는 죽어라 노력해도 습득하기 힘든 지식이 그는 그저 재미로 담는 놀이인 것이다. 수학, 역사, 인문학, 과학 모든 지식을 진공기로 흡수하듯 담는다. 그 지식의 한계는 측정할 수가 없을 정도로 방대하고 뛰어나다.

램보는 그와 수학문제를 풀며 그의 천재성에 놀랍고, 한편으로는 부럽기도 하다. 

윌을 라마누잔의 천재성에 비교하며 그의 천재성과 기량을 맘껏 펼 수 있도록 방향을 제시해 주고, 그를 세상에 도움될 수 있는 인물로 밀어주려고 한다.

하지만 윌은 자신을 진료할 정신과 의사들의 진료에 아주 비협조적인 자세를 취한다. 의사들은 하나같이 시간낭비라며 윌에게서 손을 뗀다. 

윌은 상처가 있다. 몇 번이나 입양됐다 파양 된 아픔이 있고, 양부의 학대로 인한 상처로 마음을 굳게 닫고 열지 않는다. 그는 마음을 방패로 막고 열려고 하는 자들에게 그의 천재적인 두뇌를 공격하는 무기로 사용하고 있다.

마치 그의 천재적인 지식은  자신을 방어하는  뽀족한 창인 것 같다. 책으로만 배운 지식으로 사람들에게 잘난 척하고, 상처를 주고, 공격적이지만 그는 두려움 많은 어린애에 불과했다.

로빈 윌리엄스와 맷 데이먼

램보는 윌이 마음의 문을 굳게 닫고 있어 그걸 열어 줄 사람이 필요했고,대학 동창이자 심리상담 교수인 숀을 찾아가 부탁한다. 숀과 윌과 같은 남부 보스턴 출신이고, 비슷한 배경을 가지고 있다. 숀은 아내를 사랑했고, 아내가 아퍼 6년 동안 일을 관두고, 병상을 2년이나 지킨 남편이다.

아내를 잃은 과거의 슬픔으로부터 완전히 빠져나오지 못했다. 또 의사에게 믿음이 있어야만 환자의 마음을 터 놓는다고 생각하는 교수이다.

첫 만남부터 윌이  사무실에 걸린 숀의 그림을 보고 자신의 인생을 다 안다는 듯 자신의 아픈 삶을 잔인하게 난도질하고 아내를 모욕하는 말로  윌을 자극시켜 분노하게 만들었다. 오히려 윌에게 말린 느낌이다.

숀은 윌이 한번도 누굴 가슴으로 뜨겁게 사랑해 본 적도 없고 세상이 두려워 보스턴 밖을 나가보지도 않고, 정작 경험하지도 않고 천재라 가슴속에 담겨있지도 않은 지식으로만 지껄이는 겁 많은 아이에 불과하다고 지적한다.  

숀은 윌에게 "네가 얼마나 힘들게 살았고, 네가 뭘 느끼고 어떤 애인지,책에서 인용한 말 말고 네 스스로에 대해 말하고 싶으면 와" 그럼  관심을 가져 준다고 말한다. 

숀은 자신의 이야기부터 내어 놓는다. 아내에게 첫 눈에 반한 이야기, 아내의 사소한 단점, 그리고 아파서 죽어갈 때까지의 심정과 아픔들을 말이다.

어쩌면 윌의 상처를 치료하기 위해 시작한 일이지만 숀도 윌과의 시간으로 자신의 상처를 조금씩 끄집어내며 과거로부터 빠져나오고 있었다고 생각한다.


상처란 묻어두기보다 끄집어내야 어디가 아픈지 치료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숨기고 묻어둔다고 아무는 것이 아니기때문이다. 윌의 마음을 열기 위해 자신의 마음을 열어야 되는 걸 숀은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이제 21살의 나이에 상처받는게 두려워 아무것도 하지 않으려는 것이 보는 내내 안타까웠다. 숀은 그게 방어심리라 말한다.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버림받았기 때문에 사람들이 자신을 떠나기 전에 먼저 떠나게 만들고 그 때문에 20년이나 외롭게 사는 것이라고 말이다.  

윌은 숀의 노력에도 모든걸 할 수 있는 잠재력을 타고 태어났음에도 재능을 헛되이 쓰고 좀처럼 마음을 열지 않는다. "넌 뭘 하고 싶니? 간단한 질문에도 정직한 대답을 못하고, 최소한의 노력도 하지 않고 두려워만 하며  계속 벽돌공만 하는 윌에게 숀은 시간낭비만 하고 있다고 나가라고 한다.

사람은 제각각 자신의 쓰임새를 알고 산다. 그도 자신이 천재인 걸 안다. 남이 가질 수 없는 능력을 가지고 그는 벽돌공으로 사는 삶에 안주하고 세상 밖으로 나가려 하지 않는다.

두려움에 떠는 어린애로 평생을 살 것처럼 군다. 몇십년간 죽도록 노력해서 푸는 문제를 몇 초 만에 푸는 윌로 인해 램보 교수는 좌절한다. 그런데 더 좌절하게 만드는 건 그의 재능을 헛되이 낭비하는 걸 지켜보는 것이다.

참 불공평하지 않겠는가? 하버드에 수업료를 내고도 노력하지 않으면 얻을 수 없는 결과를 재미로 하는 윌로 인해 상대적 박탈감을 가지는 사람이 또 얼마나 많은데, 언제 알을 깨고 나오려고 아니 알을 깨고 나올 생각을 하지 않는다.

자식이 알을 깨고 나오지 않으면 엄마새는 그 알을 두들긴다. 스스로 깨어나올 수 있게 기다리고 자극해 준다. 네가 깨고 나와야 엄마를 만날 수 있다고 말이다. 지금 윌은 알을 깨려고도 안 하고 있다. 

벤 애플렉

윌의 친구 처키(벤 애플렉)는 "넌 우리한테 없는 재능을 가졌어. 당첨될 복권을 깔고 앉았으면서도 너무 겁이 많아 돈으로 못 바꾸는 꼴이라구. 병신 같은 짓이지."

몸을 쓰는 벽돌공으로 계속 산다는 건 자신들에 대한 모욕이고 시간낭비라고 말이다.
처키는 그가 자신의 재능을 위해 도전하고 세상밖으로 나가길 응원하는 또 하나의 영혼의 짝이다. 
사람은 공평하지 않다. 누구에게나 똑같은 능력을 주지 않는다. 최소한의 노력이라도 해야 얻을 수 있다.

 
윌은 하버드대 스카일라를 좋아한다. 너무 완벽해 보여 솔직히 맘에 있으면서도 다가가지 못했다.
숀은 그런 윌에게 말한다."세상은 완벽한 사람은 없다. 인간은 불완전한 서로의 세계로 서로를 끌어들이니까. 너도 완벽하진 않아. 네가 만난 그 여자애도 완벽친 않아. 중요한 건 과연 서로에게 얼마나 완벽한가 하는 거야"
윌은 스카일라와 만남을 가지지만 그녀에게 자신의 내면을 보여주지 않는다. 완벽해 보이는 그녀에 비해 자신의 초라함을 보여주기 싫은 심리가 윌에게 아주 크게 자리잡은 것으로 보인다. 상처로 너무 굳게 닫힌 마음의 문도 사랑으로 쉽게 열리지 않는 것 보니...
스카일라는 윌에게 캘리포니아에 함께 가자고 한다. 사랑하기에 같이 있고 싶을 뿐인데 윌은 거절한다.
그는 그녀가 후회하는 게 두려워 사랑하지 못하고, 변하는 게 두려워 도전하지 못하고, 현재에만 안주하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
그는 보스턴을 떠나는 게 두렵고, 그녀가 나중에 자신을 사랑해 주지 않을까봐 두려워 한다. 결국 버림받을까봐 그녀를 먼저 떠나게 된다. 어쩜 윌이 말한 방어심리다. 상처받기 전에 버림받기 전에 먼저 떠나고 버리는 것으로 자신을 걸어 잠근다.
폭발하는 윌

어릴 적 고아로 입양되었다 버림받으면서 입은 상처는 생각외로 컸다. 윌의 마음을 여는 게 좀처럼 쉽지가 않다. 

숀은 아버지가 술고주망태로 취해 폭력을 행사하는 가정에서 자란 상처를 가지고 있었다. 그는 엄마와 동생이 맞지 않게 하려고 먼저 덤볐다고 말한다.
어쩜 그래서 윌의 상처를 진심으로 이해한 것 같다. 양부에게 학대 받은 윌이,그리고  사람에게 버림받은 상처가 얼마나 깊은지 알았기에 어루만져 준 것이다. 
숀은 윌에게 "네 잘못이 아냐" 계속 그의 가슴을 대고 두들긴다 "네 잘못이 아냐" 가슴을 가두는 윌에게 "네 잘못이 아냐" 계속 말해 준다. 윌이 심장에 가 닿도록 , 그리고 자신의 심장에도 전달되도록 말이다.
그래 윌의 잘못이 아니다. 고아로 입양된 것도, 몇 번의 파양도, 양부의 학대도 윌이 잘못 한 게 아니다. 그러니 두려움을 떨치고 마음이 가는 대로 살라고, 그렇게 숀은 자신과 윌에게 전하고 있다.
숀을 안고 울분을 토하는 윌로 사람의 마음이 얼마나 유리같은지 알 것 같았다. 가끔 아픈데 울지 않는 사람들은 위험하다는 생각이 든다.
나쁜 감정들을 밖으로 배출해 내지 못하고 안으로 가두어 독이 몸안에 다 퍼져 윌처럼 세상에 벽을 짓고 방어만 하게 되는 것이라고 말이다. 
천재로 태어났지만 그의 재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고, 사람들과의 관계로 인한 상처로 그의 인생은 공터 같았다. 윌과 숀은 서로가 서로에게 멘토였다.
윌에게 숀은 좋은 멘토였고, 숀도 윌로 인해 과거의 상처에서 나와 세상밖으로 여행을 떠나기로 결정한 것 같다.
내가 마음을 열지 않으면 내 마음에는 아무도 들어올 수 없다. 
세상을 다 부정하면,내가 먼저 다가서지 않으면,아무도 내게 사귀지 못한다. 외로움에 갇혀 마음을 채울 수 없으며 사랑도 경험하지 못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