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by 해이든 2020. 2. 15. 15:41

 

스칼렛 요한슨(그리트 역)

 

 

17세기 네덜란드 화가 요하네스 베르메르가 그린 '진주 귀고리를 한 소녀'를 모티브로 소설이 써지고 그 소설을 각색하여 2003년에 만들어져 개봉된 영화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이다.

 

 

콜린 퍼스(베르메르 역)

 

네덜란드 화가 베르메르(콜린 퍼스)는 먹여 살려야 할 식구가 많았고 돈을 벌기 위해 그림을 그려야 했지만 그는 작품을 완성하는데 오랜 시간을 소요함에 따라 경제적으로 쪼들렸다. 외상을 달아놓고 고기를 사고 약을 구입해야 했기에 아내 카타리나 (에시 데이비스)는 남편에게 불만일 수밖에 없었다. 집안 사정은 신경도 쓰지 않고 작업실에만 틀혀박혀 그림만 그리는 남편에게 말이다. 화가로서 실력은 뛰어났으나 집안 가장으로서는 크게 목소리를 내지 못했다. 임신한 아내와 줄줄이 딸린 자식들을 먹여살릴 수 있는 길은 오직 그가 그림을 완성해서 후원자인 라이벤에게 팔아야 했다.

 

 

주디 파핏(마리아 틴스 역)

 

카나리나의 엄마이자 베르메르의 장모였던 마리아는 베르메르가 완성된 작품을 후원자에게 파는 중개인같은 역할을 했다. 딸은 신경질적이고 예민했다. 보석이나 들여다보며 귀부인처럼 우아를 떨 뿐이었다. 실질적 집안 살림과 경제를 관리하는 건  장모 마리아였다. 그녀는 라이벤의 후원을 받기 위해 노력했고 그가 원하는 그림을 사위가 그리면 파티를 열어 라이벤에게 선보였다. 그녀에게 사위의 그림은 그저 돈벌이에 지나지않았다. 그림을 볼 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후원자를 잃지 않으려 애쓴다. 그래야 파산하지 않는다.

 

 

 

에시 데이비스(카타리나)

 

보석을 팔 정도로 경제사정이 악화되자 화가 난 카타리나는 화실에서 싸우다 남편의 소중한 그림을 망쳐버렸고 이에 남편이 화를 낸 후로 다시는 남편의 작업실에 들어가지 않았다. 이런 그의 집에 아이는 계속 늘어나고 하녀 타네케로는 일손이 턱없이 부족했다.

도자기 화가였던 아버지가 시력을 잃게 되자 집안형편이 어려워진  그리트가 요하네스 베르메르 집안의  하녀로 들어오게 된다. 카타리나는 자신이 들어가지 않는 남편의 작업실을 그리트에게 청소하라고 지시한다.

 

 

 

작업실을 청소하던 그리트는 베르메르가 그린 작품을 매료되어 감상하게 된다. 화가였던 아버지의 영향인지 그리트는 글을 읽지는 못해도 그림을 보는 시야를 가지고 있었다. 작업실은 오랫동안 청소하지 않아 먼지가 수북이 쌓여 있었다.

어느 날 창문을 닦는데 갑자기 베르메르가 들어와 그대로 포즈를 취해보라고 한다. 창문을 닦고 있는 그리트를 보고 그림의 영감이 떠오른 것이다. 베르메르는 그녀가 그림을 보는 예술적 재능이 있다는 걸 알게 되고 그녀에게 물감을 섞게 한다. 물론 질투심이 심한 아내가 눈치채지 못하게.

베르메르는 그리트에게 그의 작업실에서 색을 섞는 일, 빛과 색에 대해서 그림에 대해 가르쳐주고 설명해주며 점점 감정이 싹튼다.

한 작품이 끝나면 다음 작품을 시작하기까지 굉장히 오랜 시간이 걸리는 사위 베르메르가 예상과는 빨리 새 그림을 시작했다. 그게 그리트로 인해 영감을 얻은 걸 안 장모는 딸이 그리트를 못마땅하게 여기는데도 그녀를 내보내지 않는다. 사위가 그림을 그려 후원을 받아 돈을 벌 수만 있으면 문제 될 것이 없다고 여긴다.

 

 

 

마리아 심부름으로 온 그리트를 보고 혹한 라이벤(팀 윌킨슨)은 베르메르에게 그리트를 옆에 앉혀 그림을 그려달라고 주문한다. 라이펜의 속내는 그녀를 탐하려는 의도이다. 하지만 이미 마음속에 그리트를 담고 있던 베르메르는 라이벤에게 자신의 예술적 뮤즈라고 말하며 그의 옆에 앉혀 그리는 걸 거절했다. 대신 그의 후원이 끊기면 생계가 안 되는 베르메르로서는 다른 제안을 한다.  라이벤이 거실에 걸어두고 혼자 볼 그림으로 그리트만 그려주기로 한다.

라이벤은 흑심을 잠시 숨기고 허락한다. 그러나 그리트에 대한 욕망을 주체하지 못한 라이벤은 그녀를 찾아와 겁탈하려다 실패하고 돌아간다. 이에 그림을 빨리 달라고 성화를 부리는 것으로 분을 표시한다. 라이벤이 감정이 상해 후원이 끊길까 걱정하던 마리아(주디 파핏)는 베르메르가 그리트를 모델로 그림을 그린다고 하면 예민한 딸이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을 예상해 비밀로 하고 그림을 그리게 한다.

 

 

 

라이벤의 독촉에  마리아는 딸이 외출하는 날,  딸의 보석함에서 진주 귀걸이를 훔쳐 그리트에게 주며 사위가 그림을 그릴 수 있게 돕는다. 베르메르가  딸의 진주 귀걸이를 그리트의 귀에 걸어 그림을 그리고자 한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딸 카타리나가 알게 되면서 작업실에 들어와 그림을 보여달라며 난리 친다. 그림을 본 카타리나는 결국 울음을 터트리며 그리트를 내쫓는다.

마리아는 딸에게 그저 돈벌이에 불과한 것이지 아무 의미가 없다고 말하지만 그림 속 그리트의 눈빛을 보면 결코 의미 없지 않다는 걸  카타리나는 확인했던 것이다. 그림을 볼 줄도 모르는 카타리나에게도 전해지는 두 사람의 감정이.

 

 

 

비록 신분차이로 서로를 향해 적극적일 수 없었지만 그리트의 속마음을 꿰뚤어보듯 화폭에 담겼고 베르메르는 겉으로 표현하지 못하는 감정을 그의 붓의 터치로 담아낸 것이다.

신분의 벽 앞에서 서로를 향한 감정을 억누르고 억압해야 했던 두 사람의  뜨거운 속마음까지는 어쩔 수 없었다. 아내에게 쫓겨나는 그녀를 잡지도 못한 채 작업실에 앉아 떠나가는 그녀를 차마 보지도 못하는 베르메르, 주인의 작업실 문 밖에서 그저 머무르는 것으로 그들은 이별을 한다.

그리고 시간이 흐르고 그리트의 손에 진주귀걸이가 전달된다.

 

대화보다는 두 사람의 눈빛과 닿을 듯 말듯한 접촉으로도 두 사람 사이에 흐르는 전류를 느낄 수 있었다. 포즈를 취하는 그리트의 눈빛과 그녀를 화폭에 담기 위해 바라보는 베르메르의 눈빛 속에서도 충분히 터질 듯 말듯한 욕망과 감정이 전달되었다. 그녀의 귀를 뚫어주며 그녀의 귀를 감싸안는 손길, 그녀의 도톰한 입술을 바라보는 탐스러운 눈빛과 표정.... 크게 명대사나 감동적인 장면을 연출하지 않았으나 연기자들의 눈빛 연기로 어찌 보면 자극적인 장면 없이도 자극적이었고, 예술적이었다.

 

 

북유럽의 모나리자라 불리는 <진주 귀고리를 한 소녀> 속 소녀와 영화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 스칼렛 요한슨을 동시에 바라보며 피터 웨버 감독의 절제미가 돋보였다 생각된다.

 

 

 

 

posted by 해이든 2019. 4. 17. 21:38

감독 소피아 코폴라

사랑도 통역이 되나요?

사진작가인 남편을 따라 일본에 온 샬롯(스칼렛 요한슨)과 위스키 광고 촬영차 일본에 온 영화배우 밥 해리스(빌 머레이)의 만남은 의사소통도 되지 않는 낯선 도쿄에서 소외된 무료함과 외로움에서 비롯됐다.

같은 호텔에 머무르고 있던 밥과 샬롯은 잠을 이루지 못하고 뒤척이다 호텔 바에서 우연히 마주친다.

낯선 도시에서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고 혼자 시간을 보내야 하는 외로운 모습을 서로 발견한 것이다. 

도쿄 시내를 구경하고 노래방도 가고, 급속도로 가까워진다.

 

그게 꼭 일본이란 낯선 장소를 설정하지 않아도 말이 통하지 않으면 익숙한 곳이라 해도 혼자선 그저 외롭고 무료할 수밖에 없다.

 

 

샬롯은 철학 전공으로 졸업은 했지만  진로를 정하지 못한 자신의 미래에 대한 불안감과 두려움으로 삶이 불투명하다.

"사는 게 힘들어요. 나이 들면 나아져요?" 중년의 밥에게 묻는다.

그는 "아니"라고 하더니 또다시 "아냐. 나아져."라고 대답한다.

하지만 샬롯의 눈에 밥은 나아진 것 같지 않다.

젊은 날의 삶도, 중년의 삶에도 외로움은 물에 뜬 기름처럼 둥둥 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자신에 대해 잘 알게 될수록 주변 상황에 덜 흔들리게 되지. 알면 괜찮아."

미래를 알 수 없어 불안하고 초조하겠지만 누구나 흔들리며 살아간다. 그렇게 흔들리면서 중심을 잡아가고, 자신과 주변 환경과 상황에 적응하면 덜 흔들릴 것이다. 살다 보면 괜찮아질지도 모른다.

슬슬 세상과 타협하게 살게 된다. 내가 덜 아픈 쪽으로, 내가 덜 피곤한 쪽으로, 두루두루 원만하게 그렇게 살아가는 법을 내게 던져주게 된다.

샬롯은 또 묻는다.

"결혼생활은 살수록 나아져요?"

이번엔 밥 해리스는 "쉽지 않아."라고 대답한다.

샬롯은 이제 결혼 2년 차다. 바쁜 남편으로 인해 소외된 듯 외롭고 공허하다.

앞으로  나아질 것인가 묻는 건 지금도 너무 힘들다는 것이다.

결혼생활을 오래 한 밥도, 이제 시작한 그녀도 힘들고 외롭기는 마찬가지이다.

밥도 한때 좋았다. 아내와 항상 붙어 다녔지만 이제 아내에겐 자신보다 애들이 먼저인 게 현실이다.

"내가 설 자리가 없어."

결혼해서 아이들이 생기면 사는 건 훨씬 복잡해진다.

"제일 두려운 건 첫 애 태어날 때야. 그 순간 지금까지의 삶은 완전히 물 건너가는 거지."

이 때부터는 개인보다 가족에 대한 책임감이 더 가중한 무게로 다가오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다 아이가 성장하면서 보람이 되고, 기쁨이 되는 소중한 존재가 되어가는 것이다.

살아본 자로서, 앞으로 많이 나아간 본 자로서 미래가 아주 많이 남은 샬롯에게 "희망을 가져"라고 말해준다.

둘은 낯선 일본 도쿄에서 같은 이방인이라는 것만으로 친근해졌다. 이질 감속에서 드는 동질적인 느낌은 나이차와는 상관이 없이 소외감과 외로움이란 신호를 느꼈을 뿐이다.

처음엔 타지에서 그저 고향사람 만나 반가운 것 같은 친밀도가 생기는 정도였다.

일본 광고를 찍기 위해 잠시 온 곳이지만 일본말을 알아들을 수도 없고, 의사소통이 이루어지는 않는 상황에 놓이면 같은 언어를 할 줄 아는 사람만 봐도 반가운 것이다.

다른 세대, 다른 환경, 다른 인생인데도, 오랜 산 밥도 이제 살아갈 샬롯도 같은 향기가 난다.

그저 카펫 색깔이나 묻는 아내, 아이들은 아빠가 보고싶지만 없어도 그리 불편할 것이 없는 존재라는 걸 안다.

아이들도 아빠인  밥도 다들 익숙해져 간다는 것이다. 덜 흔들리며 사는 것이다.

잠들어 있는 남편 옆에서 잠 못 이룬 샬롯도 바쁜 남편으로 인해 호텔에서 혼자 붕 뜬 소외감이 드는 것도 아이가 생기면 옮겨갈 것이다. 덜 공허하기 위해서 적응할 것이다. 익수 해질 것이다.

 

이들은 육체적 공유가 아닌 정신적 공유를 하는 것이다.

영화의 원제는 Lost In Translation으로 통역과정에서 사라진 어떤 것을 의미한다.

꼭 같은 언어를 사용한다고 해서 다 전달되는 건 아니다.

아내와 같은 언어를 사용해도 의사소통이 제대로 이루어지는 것 같지 않았다.

자신이 전달하는 것에만 집중되어 있고 상대의 의사를 제대로 읽지 못하는 것 같다.

말의 의미를 해석해주거나 설명을 해주어야 할 것 같으니 말이다.

의견 충돌로 싸우다 보면 점점 그냥 내버려 두게 된다.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 것이라면 굳이 해명하고 설명하는 것이 다 무슨 의미가 있으랴,

좋은 게 좋은 거지 하고 상대의 기분을 상하지 않게 그냥 수용하는 일로 마무리 지으려고 한다.

바람에 덜 흔들리기 위해 그냥 적당히 뭉개고 사는 것이다.

서로 다른 언어로 인해 전달되지 못하는 것 , 서로 다른 환경으로 이입되지 않는 감정들만이 아니라는 것이다.

소통이 사라진 세상은 외로움만 더 크게 다가와 앉는다

나이차가 소통의 문제가 아니라 환경이 소통의 문제가 아니라 서로가 서로의 내면에 집중할 소리가 필요한 것이다.

'이제 파스타가 먹기 싫다. 좀 다르게 살고 싶다'라고 말하는 밥의 말에 그럼 '일본에 눌러앉아 살라'는 아내의 말에 통역기를 가동해야 할 판이다.

하지만 따지고 들면 피곤해지는 건 본인이니 그냥 사라지게 놔두는 것이다.

소통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건 외로워지는 것 같다. 공허한 메아리처럼

사랑할 때 온통 그 사람의 마음에 가 앉아 있으려고 하니  통역이 필요 없지만 왠지 결혼생활은 통역이 필요할 것 같다. 오래된 부부 사이에도 말이다. 그러니 샬롯이 앞으로 통역할 내용이 얼마나 많이 펼쳐지겠는가?

자기의 마음을 몰라주는 경우가 많아지면 통역을 해야하거나 그냥 그저 상황에 맞게 내려놔야 살아지는게 아닐까. 

밥의 '좀 다르게 살고 싶다'라는 말이 언저리를 돈다.

posted by 해이든 2019. 2. 23. 18:24
매치 포인트
감독 우디 앨런 
 

 

영화 매치포인트

 

매치 포인트란 운동경기에서 승패를 결정짓는 최후의 1점을 말한다. 

테니스 경기에서 공이 네트에 걸려 넘어가지 않고 자신의 코트에 떨어져 지거나 아니면 넘어가 이기는 것은 실력이 아닌 운에 의해서 승부가 갈린다. 이 영화에서 크리스는 운이 매우 좋은 남자이다. 그 운으로 그의 인생이 달라진다.

테니스 선수였던 크리스 윌튼(조나단 리스 마이어스)은 인생을 결정짓는 건 운에 달려 있다고 믿고 있는 사람이다. 네트에 걸려 자신의 코트에 떨어진 공은 선수로서의 그의 능력을 무시했고, 그로 인해 그는 테니스 강사로 전락하는 불운한 남자처럼 보였지만 탐 휴잇을 만난 계기로 테니스 강사가 된 게 오히려 행운으로 작용한다.

운은 잠시 내게 온 바람이라고 생각한다. 실력이 갖추어지고 부수적으로 내게 덤으로 따라오는 것이 행운이라고 본다. 그가 정말 운이 좋은 사람인지, 아님 정말 운이 없는 남자인 건지는 각자 생각하기 나름이다. 행복의 기준을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크리스 입장에서 보느냐, 노라 라이스 입장에서 보느냐, 클로이 입장에서 보느냐에 따라 행운과 불운으로 나뉘기 때문이다. 하지만 감독의 의도에 따라 크리스 윌튼의 세상에서 들여다보자.

클로이 휴잇과 크리스 윌튼

테니스 강사로 일하게 된 크리스 윌튼에게 테니스 수강생이자 영국 부유층 자제인 탐 휴잇(매튜 굿)과의 만남은 그의 인생에 커다란 행운이었다.

그리고 그의 가족과 오페라극장에서 '라 트라비아타' 오페라 공연을 같이 관람하게 되고, 탐의 여동생 클로이 휴잇(에밀리 모티머)이 크리스에게 반하게 된다.

클로이는 크리스의 성공에 대한 갈증을 채워 줄 운명이었다. 자신을 탄탄한 미래에 돛단배를 달아준 것이다.

클로이의 초대로 간 파티에서 크리스를 사로잡는 매혹적인 노라 라이스(스칼렛 요한슨)의 만남은 내가 보는 관점에서는 불운이었다.
그나마 잡은 행운을 파멸로 이끌 것 같은 치명적인 유혹이었다. 노라와의 첫 만남에 위험한 스파크가 튄다.
성공을 향해 잡은 클로이의 돛단배가 노라의 급류에 떠내려 갈 듯 크리스의 마음을 주체할 수 없게 만든다. 

 

처음부터 크리스를 대하는 노라의 눈빛은 매혹적이었다. 첫 눈에 사랑이라기 보다 탐닉같은 시선들이었다.
서로가 서로에게 유혹을 내뿜고 있었고 불꽃이 팍 터질려는 찰라에 탐이 출현한다.
노라 라이스는 탐과 사귄지 6개월된 연인이었다. 네 명이서 식사를 하는 자리에서도 크리스는 노라를 향한 시선을 거두지 못한다. 
가난한 크리스와 노라가 각자 상류사회의 자제인 탐과 클로이의  연인으로 영국 상류사회에 발을 들여 놓은 것이다.
노라를 바라보는 두 남자의 눈빛

인생을 운에 거는 남자들은 위험하다. 한 방의 운에 자신의 인생을 거는 사람처럼 불완전한 존재는 없다.

운을 쫓는 남자눈에 어쩜 운에 자신의 배우 인생을 거는 여자 노라가 보이는 것이다.

수컷들은 안다. 어떤 여자가 더 강렬하고, 유혹적이고, 섹시하고 탐욕적인가를 말이다.

 

클로이에게는 그런 매력이 없다. 그녀는 부잣집 딸임에도 불구하고 탐욕적이지 않고, 순수하고, 착하며, 노력이 인생을 결정짓는다고 여기는 사람이다. 

클로이 아버지 알렉 휴윗(브라이언 콕스)는 가족은 돌보는 게 낙인 사람이고, 겸손하고, 돈을 쓸 즐도 알고, 사람을 배려할 줄도 알고, 무엇보다 가족과 많은 시간을 보내는 사람이고, 휴가도 즐기는 사람이다. 

가정적인 남편이자 자상한 아버지였다. 클로이의 부모님은 자신의 딸 클로이가 행복해하는 것으로 크리스를 맘에 들어한다. 

클로이의 부탁으로 아버지는 크리스에게 자신의 회사에 자리를 내주고 그의 뛰어난 능력을 인정해 주며 경영스쿨에서 경영수업도 받을 수 있게 아낌없이 지원해준다.

그의 강한 승부욕으로 아버지 어머니의 인정을 받을 뿐 아니라 탐의 인정을 받은 것이다.

 

하지만 어머니는 노라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 노라가 자신의 아들과 사귀는 것이 못 마땅하다.

탐의 어머니는 무엇보다 배우와 미국인에 대한 편견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다. 배우를 여자에게 고약한 직업이라 생각하고 있고 오디션에 번번이 떨어지는 그녀가 뜬구름을 잡는다고 못마땅해 한다.

노라는 뭔가 자신의 삶이 풀리지 않는다. 번번히 오디션에도 떨어지고 수입도 없다. 그렇다고 탐에게 미칠정도로 사랑한다는 느낌도 못 받았다.

별장에 가족들끼리 놀러갔다 자신을 대하는 탐의 어머니로 인해 화가 난 노라는 빗속을 걸어 나가버리고,창문으로 그녀를 보게 된 크리스는 그녀를 따라간다. 크리스의 관심은 클로이와 있을때에도 노라를 쫓는 세포들로 움직인다.

노라를 향한 크리스의 감정은 파괴력을 가진 위태로운 욕망을 발사한다. 저 눈빛은 사막에서 갈증으로 인해 타들어가는 목마름만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리고 그들은 이성을 잠궈 버리고 순간 탐닉으로 서로를 안고 만다.   

그 일이 있고나서 노라는 의도적으로 피한다. 서로가 연인이 있는데 순간의 스파크였다고 말한다.

스칼렛 요한슨

성공에 목말랐던 크리스는 클로이의 성공기차에 몸을 싣고 결혼까지 질주한다. 

하지만 탐이 노라와 헤어졌다고 한다. 다른 여자가 생겼고 어머니가 맘에 들어한다고 말이다.크리스는 이게 자신에게 기회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아니 자신에게 주어진 운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주체할 수 없는 감정으로 그녀를 찾아 다니지만 그녀는 떠나고 없다. 

그러던 어느 날 미술관에 우연히 그녀와 마주치고,그녀를 갈구하는 눈빛으로 넘쳐 흐른다. 매혹적이고 섹시한 노라에게 빠져 들고 만다. 있다. 욕망에 목마른 숫컷의  눈빛이었다. 사랑이 아니다. 저런 눈빛은 왠지 둘 다를 망칠 수 있다는 생각을 했다.

사랑에 빠진 눈과 욕구에 불타오르는 것은 다르다고 보기 때문이다. 지나치게 뜨거운 건 지나치게 차갑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미친듯이 서로를 탐닉하고 시도때도 없이 갈구한다.

 라 트라비아타의 여주인공처럼 길을 잘못 든 것이다. 그들은 불륜이다. 운을 쫒아 자신의 인생을 결정하는 크리스에게 자신을 다 버리고 아무 것도 가지지 않는 그녀를 선택하였다면 그건 사랑이었을 것이다. 자기 희생이 없는 사랑은 사랑이 아니다.

클로이는 임신을 하기 위해 필사적이었지만 아이가 들어서지 않는다. 아내가 그렇게 필사적인데도 노라에게 미쳐있는 빛을 찾는 불나방처럼 노라에게 간다. 
재회한 크리스와 노라

하지만 현실은 냉소적이다. 현실에서 그녀가 자신에게 줄 수 있는 건 없다. 자신의 애욕을 채워주는 상대여야 한다. 하지만 노라는 질투로 그를 몰기 시작한다.

그리고 노라가 임신했다고 그의 목을 조르기 시작한다. 클로이에게 다 말하고 자신에게 오라고 한다. 질투로 그의 삶을 조여오기 시작한다.
거짓말로 노라를 피하기 시작하고, 자신을 피하고 있다고 알게 된 노라는 회사앞까지 와 자신을 숨막히게 한다.
미친듯 탐닉하던 감정은 온데 간데 없고 현실속에서 조여오는 파괴감과 두려움은  자신을 송두리째 쥐어짜기 시작한다. 
클로이를 선택하면 미래가 탄탄하고 노라를 선택하면 미래가 없다. 그 모든 걸 포기할 만큼 사랑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위선적인 현실에서 그는 사랑과 애욕의 차이였다고 말하고 있다.

책임이 따르는 않는 감정의 소통돌이속에 욕구를 위해 달려드는 남자를 조심해야 한다. 성공을 위해 불나방처럼 상류사회의 여자를 꼬여내고 그리고 그걸 잃지 않기 위해 그는 그녀의 아파트에 강도가 자주 든다는 그녀의 말을 이용해 강도로 위장한 살인을 저지르고 만다.

그녀의 앞집 노파를 죽이고 그리고 노라를 죽여 강도로 위장하고 알리바이를 위해 아내와 오페라를 본다.

 

조나단 리스 마이어스
사람은 위기가 닥쳐봐야 알수 있다고 말한다. 그녀가 적당히 자신의 탐닉대상으로 조용히 얼버무리고 살아야 되는데 그 이상을 요구한게 그녀가 죽은 이유일까?
그녀를 죽이기 위해 작은 희생은 따르기 마련이라 앞 집 노파가 죽어야 했을까?
자신의 죄를 감추기 위해 아니면 자신의 코트에 공이 넘어오지 않게 하려는 조치였을까?
그녀는 강도처럼 위장하려고 훔친 노파의 반지를 강물에 버린다. 그 반지는 난간에 부딪혀 강물에 빠지지 않는다.
그의 운이 다 되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걸 골수마약중독자가 주워 주머니에 넣은 것이 결국 그에게 행운을 안긴다. 네트에 걸려 떨어진 공처럼 난간에 걸려 떨어진 반지로 인해 그 자의 범행으로 넘어간다.
반지가 골대에 맞고 자신의 코트에 떨어져 그에게 불운을 안겨줄 지 알았는데 그에게 운을 선사하고 만다 크리스를 범인이라고 확신했던 형사의 직감은 아쉽게도 운에 밀리고 말았다. 

그는 네트에 걸린 공이, 난간이 걸린 반지가 자신에게 다 불운이었다. 하지만 상황은 그 불운을 더 큰 행운으로 그에게 승리를 안겨준다.

정말 기가 막힌 타이밍에 그에게 넘어오는 승리로 인해 그는 앞으로 정의나 노력이나 실력이 아닌 자신의 운에 운명을 걸고 살아갈 것이다. 어쩜 이게 자신에게 가장 큰 불운이라는 걸 우리는 알고 있다.

그가 자신이 벌을 받아야 한다면 한가닥의 정의가 살아있는 것이고,한가닥의 삶의 희망이 남아 있는 것이라고 말한 것으로  그는 벌을 받지 않았고, 결국 한가닥의 희망도 정의도 가지고 살 수 없기 때문이다.

자신의 아이까지 죽이면서까지  운이  따라주는 자신의 인생을 사랑할 수 있겠는가?

애를 가지려고 필사적인 노력을 해서 아이를 갖게 된 클로이, 갖길 원하지 않았지만 아이가 생긴 노라, 그녀들에게 크리스는 불운이었다.

미국이 고향이지만 미국이 싫은 노라는 다시 영국으로 돌아와 크리스와의 불륜으로 죽음까지 맞이했다. 사랑하던 남자에게 말이다.

크리스는 노라를 사랑하지 않은 게 아냐, 사랑의 색깔이 다를뿐...남자들의 화려한 거짓말은 여자들을 색맹으로 만든다.
왜 우디앨런은 '라 트라비아타' 오페라 공연을 선택했을까?
'트라비아타'는 길을 잘못 든 여자라는 뜻을 갖고 있다. 또는 바른 길을 벗어난 여자라는 뜻도 가지고 있다. 
왠지 알 것 같지 아니한가?
실제 오페라에도 비극적인 여주인공 비올레타가 있다. 사교계의 비올레타를 젊은 귀족이었던 알프레도가 사랑하게 된다. 하지만 현실은 냉혹했고, 그들은 헤어지게 된다. 그리고 그녀는  폐병으로 서서히 죽어간다. 결국 여주인공이 버림받은 채 병이 깊어져 죽는다. 

버림받은 노라 라이스의 비참한 죽음을 오페라의 비올레타의 비극을 통해 암시해준 것이라고 본다.

2005년에 개봉한 <매치 포인트>로 우디 앨런도 예술 영화가 아닌  상업영화 감독으로서 성공할 수 있다는 면모를 보여주었다고 본다.

 


(이미지 출처 : 네이버 영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