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by 해이든 2019. 4. 18. 23:13

감독 피터 위어(Peter Weir)

죽은 시인의 사회

 

대학입시교육이 학생들의 가슴에도 부모의 가슴에서도 마음을 빼내 버린 것 같다. 
스펙이 사람을 대변하는 카드가 되고, 오직 명문대를 향한 그들의 질주는 자신의 인생에서 즐거움을 빼내고 없는 것 같다. 그러나, 명문대를 나와도 그들의 질주는 끝나지가 않는다. 고학력, 넘치는 스펙을 가지고도 그들의 삶이 행복하지 않다면 무엇이 잘못된 것일까?
나는 그런 질문을 던지고 나서 답을 구하고자 할 때 영화 한편을 떠올렸다.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이다. 
 
영화의 배경은 1959년 미국의 명문 웰튼 아카데미다. 역사와  전통과 규율로 대학입시에만 전념하는 교육을 통해 명문대의 높은 합격률를 자랑한다.
자식에 대한 높은 교육열을 올리는 부모들의 희망이 된다. 그들은 그렇게 희생을 덮어서라도 자식들에게 투자를 아끼지 않는다.
새학기가 시작되어 이 학교를 졸업한 출신 존 키팅(로빈 윌리엄스)이 새 영어교사로 부임되어 오고, 소심하고 내성적인 학생 토드 앤더슨(에단호크)도 이 학교로 새로 전학을 온다. 그는 닐 페리(로버트 숀 레오나드)와 기숙사 한 방에 배정된다.
대학입시를 위한 교사들과 학부모, 학생들의 표정에서 보이는 엄숙하고 딱딱하고 경직되어 있는 분위기가 학교 분위기를 자아낸다.
공부를 위해 과외활동을 하지 못하게 하는 닐 페리의 아버지, 말대꾸도 거역도 할 수 없게 만드는 그의 아버지는 닐이 의대를 가게 하는 게 목적이다. 과연 그 목표가 자신을 위한 목표이지 자식인 닐 페리의 목표는 아닌 것 같다. 하지만  시키는 대로 해야만 하는 아버지의 무장된 표정에 아무말도 할 수 없다. 존 키팅이 말한 지옥학교에서 살아남았다는 말이 무엇인지 알게 만든다.

 

'카르페 티엠'

 
# 존 키팅의 첫 수업
그는 앞문으로 휘파람을 불며 들어오더니 뒷문으로 나간다. 그리고 학생들을 따라 오라고 말한다.
그리고 100여년 전 선배들의 단체 사진앞에서 '카르페 디엠'을 말한다.
라틴말로 표현하자면 '현재를 즐겨라. 
우리는 반드시 죽기 때문이다. 그래서 현재를 즐기라고 말이다.
우린 요즘 존 키팅의 외침 '카르페 디엠'을 삶에 받아들이며  소확행, 워라밸이라는 삶을 만들어가는 사람들이 많다. 
존 키팅은 자신을 캡틴이라 불러도 된다고 말한다. 내가 너희가 타고 갈 배를 운전할 테니 너희들은 즐겨라고 말하는 듯 했다. 내 해석이 맞는지는 모르겠지만 역시 캡틴이 티쳐보다는 자유로워 보인다.
 

"너 또한 한 편의 시가 된다는 것"

 
# 존 키팅의  수업
 
그는 서문에 있는 문장을 학생에게 읽게 한다. 그리고 '쓰레기'라고  책을 찢어 버리라 한다. 한 장이 아닌 서문 전체를 찢어 버리라고 한다.
아이들은 선뜻 찢지 못한다. 그동안의 교사들과 너무 다른 수업방식을 가진 존 키팅에 어리둥절 하다.  "인류는 열정으로 가득 차 있어. 의학, 볍률, 경제, 기술따위는 삶을 유지하는 데 필요하다. 하지만 시와 미, 낭만, 사랑은 삶의 목적인거야. 아름다움을 어디서 찾을까 ?네가 거기에 있다는 것! 생명과 존재가 있다는 것!너 또한 한 편의 시가 된다는 것."
그는 운율이나 운조가 아닌 말과 언어의 맛을 배우게 하고, 말과 언어는 세상을 바꿔 놓을 수 있다고 말한다. 
이 틀에 박힌 고정관념을 빼 주고 내면을 끄집어 내 주려고 한다. 
그는 우리나라의 교육으로 돌려 말하면 시를 낭송하고 감상하고 자신의 정서를 끌어내는 것은 입시위주의 교육에서 도움이 안된다. 그 시가 가지고 있는 문법과 운율과 저자의 철학에만 초점을 맞춘 교육방식을 향해 저돌적인 자세를 가르쳐 주고 있다. 
시를 가슴에 담아야 하는데 우리는 머리에 담는다. 시속에 담긴 저자의 의도와 문법만을 배운다. 
시험을 위한 공부를 했지, 인생을 위한 공부를 못한 거다. 그게 맞는건지 틀린건지도 재볼 여력도 없이 그저 달렸던 거다. 그러는 건지 알았다. 
분명히 대학입시 위주의 교육만을 하는 요구하는 학교 측에서는 그의 존재는 이물질이라 생각할 것이다.

 

내가 이 위에 선 이유는 사물을 다른 각도에서 보려고 하는 거야
책상위에 올라선 캡틴
# 수업시간
그는 교탁위에 올라선다.
그리고 묻는다. 내가 이 위에 올라 선 이유가 무엇이냐고? 사물을 다른 각도에서 보려는 것이라고 말한다.
"이 위에서 보면 세상이 무척 다르게 보이지. 어떤 사실을 안다고 생각할 땐 그것을 다른 시각에서 봐라. 틀리고 바보같은 일일 지라도 시도를 해봐야 해.책을 읽을 때 저자의 생각만 고려하지 말고 너희들의 생각도 고려해 보도록 해."

 

한창 꿈꿀 아이들이 어른들이 짜놓은 틀에 박혀 자신의 의지대로 자신을 조정해 나가지 못하는 삶이 보였기에 그는 자신이 선장이 되어 그 아이들의 시선을 가장자리에서 돌려놓고 싶었을 것이다. 내가 보는 각도에 따라 많은 것이 달라진다는 것을 말이다. 그러니, 어른들의 벽이 높아도 시도해 보라고, 각자 자신의 내면의 소리를 끄집어 내고 찾아서 부딪히라고 말이다. 
잘못된 교육방식을 통해 우리는 어쩌면 얻는 것보다 잃은 것이 더 많은 줄 모른다. 
존키팅은 아이들과 야외 수업도 하고, 축구도 하면서 그들의 얼굴을 무표정에서 꿈많고 장난 많은 십대들의 표정으로 바꾸어 가고 있었다. 아이들도 존 키팅의수업을 웃으며 즐거워 했다.
 입시위주의 교육에서 벗어나 키팅 선생의 가르침을 통해 인생의 가치를 깨닫게 된다. 

 

존 키팅의 수업
타인의 인정을 받는 것도 중요하지만 자신의 신념의 독특함을 믿어야 한다.
 
# 수업 
존 키팅은 아이들에게 걸으라고 한다. 처음에는 각자 제멋대로 걷기 시작하던 아이들이 결국 서로 발을 맞추어 걸었다. 그리고 지켜보던 아이들은 아이들의 걸음걸이에 맞춰 박수까지 쳤다. 무엇을 가르치려고 이런 동작들을 하게 할까? 궁금해진다. 그는 일체감의 중요성을 보려주려고 한거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관계속에서 자신도 모르게 맞추어 가며 산다. 당연히 명문대를 가라는 부모말에 싫어도 따라가고, 누군가 공부를 하면 또 따라 간다. 
그런데 존 키팅은 그러지 말라는 것 같다. 획일화의 위험성을 가르쳐 주기 위한 수업이었다. 우린 인간은 개성이 있다. 자신만의 독특함이, 또는 자신만의 선택이 자신의 성공이든 실패를 가져올 것이다. 똑같은 공장에서 찍어나오는 상품이 아니다.
자신만의 신념을 가지고 개성을 살리라는 것이다. 부모들이 찍어내는 의사말고 연극에 행복을 찾고 재능이 있다면 그 길을 선택해 가고, 작가가 되고 싶으면 작가가 되는 자신의 특기를 살려서 자신의 마음대로 자신의 인생을선택하라는 그의 가르침이었다.
즉  걷고 싶은 대로 걸으라는 것이다. 전통에 맞설 수 있는 의지를 용기를 가져야만 자신의 삶을 얻어낼 수 있는 것이라고 말이다.
하지만 교장은 그의 비전통방식의 교육이 맘에 들지 않는다. 이 곳 교육과정은 정해져있고, 이미 훌륭하다는 것도 명문대 합격률로 증명되었는데 존 키팅이 그 방식을 흔들고 아이들을 흔든다고 생각한다. 
교육의 목적은 사색하는 걸 가르치는 거라고 믿는다.
18살의 에단호크
전통에 도전하여 학교의 교육방식을 탈피하여 획일화의 위험성을 강조하며 아이들을 사고할 수 있는 길로 인도하는 것이 교육의 목적이고 자신이 가르치고자 하는 방식이라고 교장에게 말한다. 
전통적인 교육과 비전통적인 교육이 충돌한다. 
 
학생들의 사색을 가두어야 하는 교육과는 달리 존 커팅은 학생들의 사색을 끄집어 내는 탈교육을 시도한다. 
1950년대 남자 사립학교 웰튼을 배경으로 하여 입시 위주의 공부만을 위해 다른 모든 활동을 잠재워야 하는 시간싸움만 강조하는 삶에 가치는 없다. 그저 명문대를 향한 발걸음만 재촉한다. 선생도 부모도 학생도 말이다.
존 키팅의 교육으로 인해 아이들은 좀 더 자신의 꿈을 향해 도전한다. 
 
닐 페리는 하고 싶던 연극 무대에 서고, 사실을 알게 된 아버지는 강경하게 나온다. 그러나 멈출 수 없었던 닐 페리는 연극공연무대에 올라 멋진 무대를 만들어 내고 자신이 너무 잘한다는 걸 알게 되고 희열을 느낀다. 닐 페리는 아버지에게 사육되는 자식같았을 것이다.
 
벗어나지도 아버지를 설득할 수도 없다는 걸 인지한 건지, 자신이 하고 싶은 것과 부모가 바라는 것이 충돌하고, 자신은 거역할 수 없는 벽앞에서 자살을 선택해버리는 슬픈 상황. 
이 사건은 아버지의 반성도 교장의 반성도 학교의 잘못도 아닌 오직 존 키팅의 교육방식에 의해 벌어진 비극적인 상황으로 몰고 가게 된다. 부모와 교장의 단합으로 학생들은 퇴학을 당하지 않아야 하고, 오로지 존 키팅을 내쫓게 된다.

 오 마이 캡틴!

개혁과 도전은 그렇게 존 키팅 한 사람을 처단하는 것으로 다시 전통적인 교육방식에 아이들의 양심도 꿈도 묶어 버렸다. 토드 앤더슨은 소심하고 용기가 부족했던 자신의 내면을 끄집어 내주고, 야성을 일깨워 준 캡틴을 희생양으로 몰아버린 상황에 죄책감과 미안함으로 마음이 아프다. 학생들은 문을 열고 나가는 존 키팅을 향해 책상에 올라서며 마이 캡틴을 외친다. 교장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학생들은 책상에 올라서며 마이 캡틴을 부른다. 눈물 나는 장면이며, 가슴 아픈 장면이었다

학생들과 소통하려고 하고, 억압된 내면을 끄집어 현재를 즐기게 하려는 그의 교육방식은 아이들을 대신해 물러나야 했다. 그러나 아이들의 가슴에는 그는 영원한 캡틴으로 남을 것이다. 참교육이 무엇인지를 우리에게 보여주었으나, 우리는 아직도 애들을 틀에 끼어놓고 쪼이고 있다. 슬픈 현실이다. 캡틴 같은 스승들이 교실을 가득 채웠으면 한다. 

캡틴의 가르침대로 자기 걸음을 걸어갔으면 좋겠다.
그리고 '카르페 디엠'..현재를 즐기자.  불투명한 내일을 위해 투명한 오늘을 고통스럽게 가두지 말자.
 
18살이었던 에단 호크와 로빈 윌리엄스의  첫만남은 이렇게 이 영화에서 교사와 학생으로 시작되었다. 
이 영화를 계기로 로빈 윌리엄스의 추천으로 에단호크는 에이전시 계약을 했다. 한솥밥을 먹게 된 것이다. 이 영화로  1990년 아카데미 각본상을 받는다.

 

posted by 해이든 2019. 1. 26. 22:30

영화 달링

 감독 앤디 서키스
 

 

일단 로빈(앤드류 가필드)의 삶에 몰입해 보려고 한다.
다이애나(클레어 포이)에게 한 눈에 반한 로빈과 '아 이사람이구나' 하는 느낌이 들었던 다이애나는 서로에게 마법처럼 끌려 결혼을 한다. 
앤드류 가필드와 클레어 포이

로빈은 사업을 하러 케냐까지  다이애나를 동행하며 달콤한 결혼생활을 즐기고 있다. 그리고  다이애나는 임신을 하게 된다.

그런데 신은 장난꾸러기가 맞는가 보다. 
갑자기 로빈이 폴리어 바이러스로 인해 전신이 마비된다. 목에 구멍을 뚫어 호흡기를 집어넣고 기계에 의해 숨을 쉬어야 한다. 갑작스럽게 찾아온 불행앞에 만삭이 된 다이애나는 일단 아이를 출산하고 나서 남편을 케냐병원에서 영국으로 데리고 간다.
하지만 할 수 있는 게 없다. 저렇게 호흡기에 의존해 숨만 쉴 뿐 전신마비로 말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병원에서 이렇게 죽을 날만을 기다리는 환자가 되어 버렸다. 
자신의 처지를 의식하지만 그 어떤 것도 할 수 없는 로빈은 우울증까지 겹쳐 다이애나의 면회도 거부한다. 
그러나 남편을 포기할 수 없었던 다이애나는 계속 남편 곁으로 다가가 삶의 의욕을 부추기나 그는 죽게 해 달라고만 한다.  
다이애나와 로빈
로빈의 감정으로 들어가면 나는 그 마음을 온전히 다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다. 사는 게 중요한 게 아니다. 어떻게 인간답게 사느냐가 중요한 것이라 여겼을 것이다.
이렇게 시체처럼 눈만 뜨고 사는 게 어찌 사는 거라 할 수 있을까? 
자신의 아이를 안아 볼 수도 없는 이런 아빠로 사느니 없는 게 낫고, 젊은 다이애나가 새 출발할 수 있게 보내는 게 맞는 것이다.
짐만 될 것이다. 불행할 것이다. 죽는 게 낫다고 나 역시 생각했을 것이다. 
그가 처음으로 꺼낸 말은 그냥 죽게 해 달라는 소리였다. 
다이애나는 로빈에게  자신이 제일 힘든 것은 당신이 죽고 싶다고 말을 하는 것이라 했다. 자신이 "정말 어떻게 해주면 좋겠냐?"고 말이다. 
로빈은 일단 자신을 병원에서 나가게 해달라고 한다.  그러나 병원에서는 절대 안된다고 강경하게 막는다. 호흡기없이 살 수 없고, 만약에 호흡기에 문제가 생기면 2분안에 죽을 수 있다고 말이다. 그는 말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병원에서 이렇게 사느니 차라리 그 편이 낫다고!
로빈과 아들 조나단
다이애나는 간호사와 친구들의 도움을 받아 로빈을 병원으로부터  빼내 집으로 옮긴다. 집에 호흡기를 설치하고 어린 아들과 아내 다이애나와 친구들의 도움으로 점점 삶을 찾아간다.
로빈은 침대에서만 생활하다 우연히 아들이 끄는 유모차를 보고 친구 테디 홀에게  인공호흡기가 달린 휠체어를 제작해 달라고 한다. 
아마 이것은 그 당시 혁신적인 기구였다. 중증 장애인도 병원을 나와 생활할 수 있게  삶의 활력을 주는 발명품인 것이다.
 그는 아프리카를 가고 싶다고 말하는 아들의 말을 시작으로 아내와 아들을 데리고 휠체어를 타고 세계를 경험하며 다닌다. 
휠체어를 탄 로빈과 친구들

 

오로지 아내와 아들때문에 살기로 했던 삶이 아내의 배려와 사랑으로 그는 불가능한 것 같은 삶을 아주 길게 살아냄은 물론이고, 병원에서 꼼짝없이 갇혀 세상밖으로 나오지 못하는 중증 장애인들을 위해 자선기금을 모으고 휠체어를 제작하여 자신과 같은 삶을 살 수 있게 봉사한다. 
그러나 로빈은 너무 오랜 세월 호흡기를 끼고 살아서 염증이 생겨 피가 나고, 점점  고통스러워진다. 
침대에서 고통스럽게 피를 흘리고 있는 로빈의 모습에  놀란 아들의 표정에 로빈은" 괜찮아 괜찮아로" 말로 다독이지만 겁먹은 아들의 표정앞에 오히려 로빈이 더 걱정이 되었다.

 

가족

 

로빈과 다이애나, 그리고 아들 조나단 세명이 자연을 바라보고 있다.
로빈은 이제 그만해야겠다고 한다. 아내를 위해 살아보려고 했던 삶이었다. 그리고 행복했다. 아내와 아들로 인해, 즉  상대로 인한 행복이었다. 그게 작다는 건 아니다. 절대적인 자신만의 행복일 수는 없다.  로빈은 케냐에서 들었던 이야기를 꺼낸다.
포로로 끌려온 사람들이 감옥 같은데 갇혔다. 그러자 리더격인 사람이 자신들의 부하들에게 죽음을 허락한다고 말을 했고, 아침이 되어 보니 모두 죽어있었다. 
영화초반에 이 이야기를 듣고 나는 생각했다. '왜 살지 않았을까, 왜 죽었을까?'하고 말이다. 하지만 지금 로빈이 그 말을 꺼내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목숨만 부지한 채 포로로 사는 것보다 죽는 것을 택했던 그들의 선택이, 그리고 지금 죽음을 선택하려는 로빈의 마음도 말이다. 
다이애나는 흥분하지만 받아들인다. 로빈과 함께 한 삶이 자신의 삶이었기에 로빈의 결정이 아프고 힘들지만 아내나 친구나 아들을 위한 삶이 아닌 자신을 위해 선택하는 죽음이라면 이별을 해야 한다는 것을 말이다.
당신이 그 선택을 하는 것이 어느 누구도 아닌 자신을 위한 것이라면, 상대적인 행복이 아닌 절대적인 행복을 위해 선택한 죽음이라면  말이다.

 

달링

 

"당신의 삶이 내 삶이야..내 사랑 나의 삶"이라고 말하는 로빈의 모습이 죽어가는 모습이라고 생각하기에는 너무 행복해 보였다.
다이애나도 "미투"라 말하며 마지막 작별을 한다.
난 로빈이 상대적 행복으로 삶을 선택했고 절대적인 행복으로 죽음을 선택했다고 본다. 
그리고 그는 자신과 같은 중증환자들에게 세상밖으로 나올 수 있게 도와 주었고, 주위 사람들에게 많은 힘을 주었다. 
친구의 말처럼 로빈이 불행하게 되어서가 아니라 그가 살아가는 모습으로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삶의 힘을 얻어간 것이다.
 
로빈 캐번디시는 영국에서 가장 오래 생존한 후천성 전신마비환자로  세계를 돌아다니며  자신과 같은 중증환자들을 위해 봉사한  전설적인 인물이다. 
20대 후반에 목 아래로는  마비가 되어 인공호흡기에 의존해 삶을 살아야 할 운명이었음에도 다이애나의 사랑으로  누구보다 열정적으로 살다간 이야기가 너무 인상적이었다. 그의 아들 조나단 캐번디시가 자신의  부모님에 대한 러브스토리를 영화로 제작하여 탄생한 작품이다.
달링의 원제포스터

 

솔직히 영화를 보면서 아쉬운 점은 우리나라에 영화를 가져오면서 달라지는 제목 때문이다. 어쩜 이 영화는 다이애나와의 사랑이야기보다는 로빈이 전신마비로 살아낸 삶에 더 비중을 둔 영화라고 본다.
그런데 달링이란 제목은 왠지 로맨스물로 착각하게 만든다. 포스터도 그렇구. 달달한 로맨스물처럼 유인하여 낚시질 당하는 사람이 어디 한 둘일까? 물론 다이애나의 사랑이 없었다면 어려웠을 일이라는 건 알겠지만 굳이 제목을 <달링>이라고 지어야 하는 지를 묻고 싶은 것이다.
얼마 전 본 <내사랑>이란 영화도 그랬다.  하지만 사랑이야기라기 보단 장애를 가진 여류화가의 전기적인 스토리라고 본다. 
우리나라에서는 전기영화가 먹히지 않나? 왜 자꾸 로맨스물로 둔감시키는 걸까? 포스터나 제목에 좀 영화의 본질을 제대로 담아낼 수 있게 선정해 주었으면 좋겠다.
posted by 해이든 2019. 1. 5. 23:32

영화 너의 결혼식

누구나 과거의 한 페이지를 펼치면 첫사랑이 있을 것이다.

고등학생 3학년인 우연앞에 한 여학생이 교무실로 들어온다. 첫눈에 반한다.

그녀는 전학생 '승희(박보영)'.

작지만 당차보이고 까칠한 그녀에게 한눈에 반한 우연은

그저 속없이 웃고, 순수하고, 키도 크고 능청스러운데다 귀엽기까지 하다.

우연은 그녀와 떡볶이를 먹기 위해 학교 담을 넘는 등 그녀를 졸졸 쫓아다니며 그녀와 꽤 친해진다.

그리고 잘지내라는 전화 한통을 남기고 그녀는 또 엄마와  사라진다.

 

고등학생 승희와 우연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치킨집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던 그에게

우연히 승희의 모습이 담긴 대학교 홍보물을 보게 된다.

우연은 승희가 다니는 대학에 입학하기 위해 죽도록 공부한다.

대학이 아닌 승희가 목표가 된 남자 우연이다. 그리고 대학에 들어가고 승희를 만난다.

승희는 고등학생때부터 꿈을 향해 끊임없이 노력해 온 캐릭터이고,

우연은 승희만이 목표였던 직진남이다.

"세상의 반이 여자면 뭐해. 네가 아닌데"라고 말할 만큼 우연에게는 승희가 세상이었다.

고등학생, 대학생을 거쳐 취준생인 된 우연은 승희와의 세번째 만남으로 인해 그들은 진정한 커플이 된다.

여기서부터 아주 꿀이 떨어진다. '

정말 이렇게 달달해도 돼'라고 생각될 만큼..박보영과 김영광의 표정이 너무 살아있어서 좋았다.

 

사회초년생 커플

시간이 흐른다 시간이 흐른다는 것은 많은 것을 내포한다.

삶도 변화하고 , 생각도, 위치도, 환경도 변해간다는 것이다.

그속에서 다채롭게 펼쳐지는 상황, 사건, 감정 변화로

달달함도 숙성되기도 하고, 차겁게 식어가기도 하고, 부패되기도 할 것이다.

점점 현실의 벽에 부딪힌다. 그들도 현실속에서 마주치는 상황들과 문제들로 점점 힘들어진다.

사회초년생이 거치면서 받아들여야 하는 문제들,

번번히 취업에서 미끄러지며 자신감을 상실해가는 우연은 점점 지쳐간다.

그 옆에서 우연을 지켜보는 승희도 눈치를 보고 있다.

우연은 결혼을 해야 되는데 현실은 너무 답답하다.

취직도 되지 않고 있으며, 금전적인 문제부터 자존감까지 무너지는 듯 했다.

현실에 가까워질수록 사랑은 심장을 떠나 현실로 옮겨 붙고,

속없이 밝았던 우연의 얼굴에서 점점 웃음이 사라져 가고 있다

심장이 시키는 대로 사랑하던 때와는 다르게 머리로 옮겨진 현실에서 자신의 처한 상황이,

암울한 내일이 사랑마저 마구 흔들어 놓을 것 같아 불안했다.

 

박보영과 김영광

그리고 우연이 친구에게 내 뱉은 말, 머리에만 두어야 했던 말을 입 밖으로 끄집어 내고 말았다.

"그녀를 만나지 않았더라면 지금 나는 어떻게 살고 있을까?

승희를 만나고 내 인생이 꼬여버린 것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할까봐 겁이 난다." 

승희가 듣고 말았다.

그게 그저 머리에 있는 말이 아닐까봐, 심장에 있는 말일까봐 겁이 난다. 둘다.

서로를 향한 사랑이 서로를 향한 원망이 되어버린다는 것이..

결국 아버지의 폭력에 엄마와 도망다녀야 했던 승희에게 저 말은 사랑을 흔들어대기 시작했다.

사랑이 삶으로 인해 흔들리기 시작한다.

직업, 스펙, 성공, 돈이 없이 무조건 사랑만으로 배부르지 않기 때문이다.

사랑은 심장만 채워진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심장을 뛰게 하는 것은 사랑만 있는 게 아니라는 걸 시간의 흐름으로 알게 된다.

사회에 나온 그들은 서로 다른 생각을 담아내게 되고

서로의 실패가 '혹시 널 만나 그렇게 된 게 아닐까.'

'아니 널 만나지 않았더라면'이라는 부정으로 상대를 탓하게 될까봐

불투명한 삶만큼 사랑도 흐릿해지는 게 겁이 나는 것이리라.

사랑에 미래를 걸지 못하고 현실도 담아내지 못할까봐 말이다.

"우리 아빠가 그랬다,엄마를 만나고 되는 게 하나없이 꼬여버렸다고,

그래서 네가 그런 말을..그런 생각을 하는 것이 싫다고 나중에 후회하게 될 것 같다고."

자신의 엄마처럼 살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자신의 실패를, 불행을 엄마탓으로 덮어 씌우는 아빠로 인해

사랑이 폭력으로 부패해 버린 삶이 얼마나 비참하다는 걸 아는 승희로서우연과 함께 할 수 없었을 것이다.

뻔한 결말을 향해서 말이다.

"그 말을 못 잊는게 아니라 네가 그런 생각을 했다는 거 그걸 못 잊는 거야"

한 순간의 감정으로 누구나 사랑에 빠질 수 있다.

하지만 사랑을 유지하는데에는 수많은 장치들이 필요하다.

 

첫사랑이 떠난다

사랑은 타이밍이라는 승희와 타이밍이 좀처럼 맞지 않는 우연의 사랑은

감정마저 타이밍을 놓치고 이별하고 만다.

 

첫사랑이었던 승희의 청첩장을 받아든 우연은 착찹하다.

알 수 없는 감정에 분노도 하고 다운도 된다.

 사랑만 타이밍이 있는 것이 아니라 살아가는 모든 것들에게는 타이밍이 있다.

정말 두사람만 봤을 때 풋풋하다. 그들은 그속에서 성장하고 아퍼하고 그리고 이별한다.

우연에 비해 승희는 현실적이다. 잠시 한 순간 뜨거운 사랑을 그려낸 영화가 아니다.

13년에 시간의 흐름속에서 변화하는 현실에 그들의 첫사랑을 그릇에 담았다.

그것들이 꽃피우기 위한 과정을 주고 꽃 피웠을 순간을 주고 꽃이 지는 현실을 주고

심장에서 멀어지는 일련의 과정속에 성장하고 성숙해가는 남녀에 대한 이야기다.

어떤 것들은 작게,어떤 것들은 크게, 살아가는 것에 사랑이 담긴다고 보는 1인이다.

'사랑이 밥 먹여주는 게 아니다'라고 말하는 현실주의자다.

사랑보다 배고픈 게 먼저인 나다. 누런 나는 말이다.

그러나 아직도 순수한 사랑의 첫사랑의 기억은 가끔씩 내 감성을 두들긴다.

posted by 해이든 2019. 1. 4. 14:16

걸작이라는 수식어가 어울릴 법한 영화 한 편을 소개할까 한다.

이탈리아 영화 천재 로베르토 베니니의 작품으로 1998년 아카데미 외국어 영화상, 음악상, 남우주연상을 수상하였고, 같은 해 유럽 영화상 작품상을, 크리틱스 초이스 영화상 외국어영화상을 비롯하여  깐느가 그랑프리를 헌사한 영화이다.

작품성을 세계적으로 인정받은 홀로코스트 영화이다.

홀로코스트란 제2차 세계대전 동안 나치 독일에 의해 유럽 지역의 유대인들을 대량으로 학살한 사건을 말한다.

외신 기자들을 통해 유럽 유대인 학살사건을 지칭하는 개념으로 알려져 있다.

제2차 세계대전  토스카나주를 배경으로 이탈리아계 유태인 귀도가 나치의 유태인 수용소에서 아들을 구하는 부성애를 다룬 영화이다.

대부분의 홀로코스트 영화는 정말 참담하다. '사람이 사람한테 어떻게 저럴 수 있냐'를 놓고 분개하지 않을 수 없는 비 인륜적이고 비상식적인 것을 넘어서 말을 잇지 못하게 한다. 그래서 영화를 보고 나면 한동안 우울증을 앓아야 하는 나다. 

그런데 이 영화는 홀로코스트 영화임에도 학살에 초점을 두지 않고 아들에게 이 참담한 현실을 보여주지 않으려는 재치 있는 아버지에게 초점을 맞춘다.

아버지 '귀도'역을 맡은 배우는 이탈리아의 유명한 코미디 배우인 로베르토 베니니다. 그는 감독. 각본. 주연을 맡아 영화사에 빛나는 걸작을 만들어 냈다.

유대인 청년 귀도는 로마에 상경한 시골총각으로 유머와 재치스러운  매우 긍정적이고 밝은 성격의 소유자다. 숙부 밑에서 웨이터로 일하게 된 귀도는 초등학교 여교사인 도라에게 첫눈에 반하게 된다.  

이미 약혼자가 있는 도라는 순수하고 긍정적인 귀도의 구애와 사랑에 끌리게 되고, 그의 마음을 받아들이며 결혼하게 된다. 그리고 조슈아가 태어나고 그들은 단란한 가정을 이루고 산다.

귀도와 조수아와 도라
조슈아와 귀도와 도라 한가족

아들 조수아가 5살이 되던 생일날, 갑자기 들이닥친 군인들로 인해 수용소로 가는 기차에 실리게 된다.

그 소식을 들은 도라는 유태인이 아니지만 가족과 운명을 같이 하기 위해 기차에 오른다.

기차 안은 유태인들로 꽉 들어찼고, 아들에게 이 처참한 현실을 설명할 방법이 없는 귀도는 평상시 성격처럼 긍정적으로 게임이라고 한다. 우리는 선택된 것이라고!

식당 앞에 '유대인과 개는 금지'라고 적힌 글을 보고 조수아가 물었을 때도 그는 재치 있게 대답했던 아버지였다.

이번에도 그는 아들이 이 현실을 모르도록 해야 했다. 5살인 아들의 눈높이로 말이다.

아들이 겁먹지 않게, 놀라지 않게 자신의 아들을 지켜내야 하는 아버지만 존재하는 것 같았다.

여자와 남자로 나뉘어 수용소 생활을 하게 되고, 노동력이 없는 아이들은 가스실로 보내지는 상황에서 아들을 숨겨야 했다. 

독일군이 들어와 규칙을 말하겠다고, 독일어 할 수 있는 사람 앞으로 나오라고 할 때에도 그는 손들고 나간다.

아들에게 게임이라고 어떻게든 믿게 하고 싶었다.

독일어를 할 줄 아냐고 옆에 유태인이 묻자 그는 '모른다.'고 하면서 나간다. 

그는 독일군이 독일어로 말하는 걸 마치 알고 해석하는 것처럼 조수아를 향해 말을 한다.

지금부터 게임규칙을 잘 지켜 1,000점을 먼저 얻는 1등에게는 진짜 탱크를 선물로 준다는 말과 꼴찌에게는 등에 멍청이라는 딱지를 붙인다고 말이다. 그는 독일어를 모른다.

그저 아들을 향한 소리였다. '널 살리겠다는 나의 의지다.'

그 비극적인 상황속에서도 귀도는 아들을 지켜내기 위해 아들을 숨겨야 했고, 아버지를 믿는 어린 조수아만이 웃음을 짓고 있다.

진짜 탱크를 준다는 말에 기쁜 조수아는 잘 숨어 있어야 하고 들키지 않아야 했다.

그렇게 귀도는 아들과 계속 게임이라고 하면서 아들을 숨기며 수용소 생활을 버티어 간다.

그 두 사람을 제외한 주위의 사람들은 웃을 기운도, 귀도의 행동을 신경 쓸 여력도, 의지도 없이 어둡게 짓눌리고 있었다.

오직 두 사람만이 다른 세상에서 게임을 하고 있는 착각이 든다.

그러던 중 독일군들이 수용소에서 철수하려는 상황을 눈치 챈 귀도는 조수아에게 마지막 게임이라고 말한다.

940점을 받았으니 이제 60점만 받으면 일등을 한다고, 오늘 밤만 들키지 않으면 네가 일등이고 사람들이 널 찾고 있으니  내일 아침까지 숨어서 나오면 안 된다는 말한다.

주위가 완전히 조용해지고 사람들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숨어 있어야 진짜 탱크를 받는다고 아들 조수아를 숨겨놓는다.

자기는 사람들을 딴 곳으로 유인하겠다고 말하고 여자처럼 변장한 채 아내 도라를 찾아다닌다.  

아내만 찾으면 단란한 가정으로 돌아갈 수 있다.

여자 수용소 안은 텅 비어있고 그는 독일군에게 발각되어 끌려가게 된다.

그렇게 독일군에게 끌려가던 귀도는 아들이 숨어 있는 쓰레기통을 지나치게 되자 아들을 향해 웃어 보이며 한쪽 눈을 찡긋해 보인다.

아들 조수아도 아빠를 향해 한쪽 눈을 찡긋해 보인다. 그리고 귀도는 씩씩하게 병정 걸음을 흉내내며 앞으로 걸어간다.

귀도의 등 뒤에는 총을 겨눈 독일군인이 따라간다. 잠시 후 한 방의 총소리가 들린다. 이 영화의 명장면이 아닐 수 없다.

인생은 아름다워 명장면 아들에게 윙크하는 귀도
아들 조슈아를 향해 윙크하는 아버지 귀도

 

아들을 위해 병정걸음으로 걷어가는 아버지 귀도
아들에게 병정놀이처럼 보이게 하려는 귀도
아빠에게 윙크하는 아들 조슈아
아버지 귀도의 윙크에 답하는 조슈아

독일군에게 발각되어 어두워진 상황에서도 그는 아들에게 게임을 하는 아빠로 웃어주며  윙크하던 모습이 잊히질 않는다.

아들을 위해 아버지는 웃는다.

네가 사는 세상은 널 향해 웃어주지 않지만 내가 주는 세상은 널 위해 웃게 해 주겠다는 그의 희생 앞에 먹먹했던 가슴이 문을 열었다.

누군가는 그런다. 홀로코스트 영화를 너무 장난스럽게 그려서 거부감이 들었다고?

그럼 묻고 싶다. 당신이라면 5살밖에 안된 아들에게 저런 상황을 어떻게 설명해 줄 수 있느냐고?

어른인 나도 유대인에게 가한 학살을  이해할 수가 없는데, 용납이 되지 않는데, 과연 저 어린아이에게 무어라 설명할 것이며 어떻게 이해시킬 수 있는지를 말이다.

날이 밝았다. 독일군이 떠나고 사람들이 보이지 않자 조수아는 쓰레기통에서 나온다.

그리고 그 순간 거대한 진짜 미군 탱크가 조수아앞에서 멈추어 선다. 아빠의 말처럼 그는 1등인 것이다. 조수아를 살리고 싶은 귀도의 의지가 이루어졌다.

미군은 조수아를 탱크에 태워준다.

그리고 유대인 행렬속에서 엄마를 발견한 조수아는 엄마에게 아빠와 자기가 게임에서 이겼다고 말한다. 아빠가 웃겨서 배꼽 빠지는 줄 알았다고 말한다.

아빠의 유머가 익살스러운 모습이 아들을 저 암담한 환경속에서 절망을 모른 채 게임으로 알게 한 그의 모든 것이 아름다운 순간이었다. 아이의 동심에 히틀러라는 악마를 느끼지 않게 해 주었다.

아들을 살리기위한 코미디는 우리에게는 슬픈 희생이었다. 그 희생은 조수아에게 아름다운 선물이었을 것이다. 

이 영화는 암울하고 비참하고 잔인함 속에서 게임으로 아들의 삶을 희망으로 인도하기 위한 몸부림이라고 생각하면 귀도의 익살스러움에 우리는 배꼽이 빠지게 웃을 수 없다.

어린 조수아가 배꼽 빠질 정도로 느끼게 해 준 귀도의 사랑은 뜨겁고 또 뜨거운 아버지의 사랑이었다.

언제 죽을지 모르는 상황에서도 아들과 아내를 향한 그 숭고한 사랑과 무엇이든 이루어진다는 그의 의지가 아들을 살려 밝은 세상으로 돌려보냈다.

아빠의 말을 끝까지 들은 아들 조수아가 날이 밝아 정적만이 감도는 수용소 광장에 홀로 서 있고, 탱크 한대가 조수아를 향해 다가온 장면에서는 가슴이 먹먹하였다.

귀도의 희생이 헛되지 않아서, 그의 의지가 또 이루어냈다는 믿음을 주어서 조수아의 내일이 아름다울 수 있게 빛을 주어서...

그래도 인생은 아름답다고 말하고 싶은 감독의 의지가 무엇인지를 알게 되었다.

긍정적이고 사랑으로 가득 찬 귀도의 희생이 아무리 힘들고 비참하더라도 의지만 있다면 웃음을 잃지 않고 좌절만 하지 않는다면 그래도 세상은 살아볼 만하다.

세상이 아름다워지느냐, 아니면 어두워지느냐는 내 의지에 달려 있다고 말이다. 그러니 희망은 어디에나 있다. 우리가 의지가 없어 안 보이는 것뿐이라고. 

상황이 어떻든 너의 의지에 따라 달라질 세상이라는 걸 말하는 듯 하다. 이 영화는 내게

다른 홀로코스트 영화처럼 끔찍한 장면을 보여 주지도, 지옥같은 비참함을 보여주지도 않았다.  묵직한 소재를 무게 있게 다루지도 않았고 가볍게 장난스럽게 다루었다고 말하는 이들의 의견도 존중한다.

하지만 카메라는 '내 자식에게는 좋은 세상만 알게 하겠다', 그리고 '이 어두운 현실에서 아들을 지켜낼 것이다', '이 어두운 현실을 아들은 느끼게 하지 않을 것이다'라는 부성애만 비추어 주었다.  

끝까지 슬픈데도 울게 하지 않는다. 슬픈데 절대 울면 안될 것 같은 의지를 심어 놓는다. 그래서 더욱더 먹먹하였다.

잿빛 수용소안에서 가족을 생각하며 눈물지는 도라의 모습도, 아들을 향해 게임을 하는 아버지도 , 그저 우리가 눈이 아닌 가슴으로 느끼게 그려내서 슬프고도 아름다운 것이다.

우리의 외면이 아닌 내면을 건들어주어서 이 영화는 우리가 공감할 부모 자식 간의 사랑을 이야기로 풀어놓은 것이다.

홀로코스트라는 영화라기보다 아들을 향한 아버지의 사랑에 초점을 맞추면 이 영화는 훌륭한 작품이라고 본다.

세상이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 그 안에 사는 사람들이 사랑으로 아름다워지는 것이다. 사랑이 없는 사람이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 사랑으로 인해 그 힘든 시간을 버틸 수 있고, 사랑 받음으로 또 아름다워질 수 있는 것이다.

상황을 코미디화 시킨 게 아니고 아들에 대한 부성애가 5살 아이의 눈으로 맞추어 주느라 따뜻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자신이 끌고갈 의지만 있다면 내가 사랑하는 이들을 위해 내 의지를 믿고 싶어 지는 영화였다.

내게 이 영화는 영화이상의 나침반이 되어주었다.

posted by 해이든 2019. 1. 2. 18:24

 

 

살짝살짝 보이는 미소와 목소리 톤이 너무 좋은 배우 '박성웅'

오직 박성웅이 출연하는 영화라서 본 영화이다.

여성 감독 방은진은 '이 영화는 연기에 관한 영화'라고 말한다. 감독이기 이전에 그녀는 배우이다.

배우인 그녀가  연기에 대한 깊이 있는 접근을 시도한 영화라는 점에서 좀 기대를 했다.

배우라는 직업을 가진 사람에 대해 좀 생각해 보게 된다.

가끔 배우들이 TV에 나와 연기 속의 인물에서 빠져나오느라 정말 힘들었다는 말을 한다.

혹자는 1년이 걸렸다는 말을 하는 걸 봤다.

이해가 되는 듯 하면서도 또 뭘 그렇게까지 하는 맘도 있었다.

영화나 드라마속의 인물로 사는 건 그냥 연기일 뿐이다. 연기가 종료되면 자신의 모습으로 돌아오면 되는 것이 아닌가?

가끔 배우들의 실제 모습을 보면 수줍음도 너무 많고 말도 잘 못하는 그런 사람이 드라마에서 악역으로 또는 정반대의 성격인  배역을 너무 자연스럽게 연기하는 걸 보면  소름이 돋는다.

정말 연기를 잘한다고 생각한다.

배우라는 직업을 가진 그들이 그 역의 인물로 살기 위해서 정말 피나는 노력을 하거나 컷 들어가면 눈빛부터 달라져 몰입하는 것을 보면 천상 저 사람은 배우로 살 운명이라는 생각이 든다.

조명이 켜지고 거기에 압박감을 느끼면서도 무대 위에서 조명을 받고 살아야 하는 게 배우의 운명이다.

 무대위에서의 함성이 그들에게 희열을 주고 그로 인해 숨 쉬는 것이다. 아님 무대 위에 설 수 없는 게 그들의 숙명이다.

영화와 연극은 또 다른 무대이다.

모든 관중은 무대만을 주시한다. 그 관중의 시선을 무대로 모아야 하고, 거기에서의 침묵도 듣는다. 침묵마저 무대 위의 연출이고 배우의 대사와 연결된 장치인 것이다. 관중들도 같이 호흡하는 게 연극이라고 본다.

영우는 아이돌 스타다. 불미스러운 사건으로 활동을 중단한 그가 연극무대로 재기하려고 한다.

그러나 그의 의지가 담겨있지 않은 것 같다. 소속사의 권유에 밀려 나오기 했지만 의욕이 제로다.

그런 영우에게 베테랑 배우인 재하가 연습 중에 던진 대사다.  그 연기에 정말 빠져든 영우는 눈물을 흘린다.

"지금 모두 침묵을 듣고 있지? 연극에서의 침묵은 잠깐은 관심을 끌 수 있어도 절대 오래 못 가! 긴장이 금방 사라져 버리니까, 그래서 매 순간 섬광 같은 스파크가 필요한 거야. 우리가 진정으로 채워야 할 것들"

영우는 그 이후로 재하와 연기에 열정을 보인다. 그리고 점점 재하와 연기에 무서울 정도로 흡수한다.

재하에게는 사랑하는 여인 희원(윤승아)이 있다.

희원은 재하가 작품에 들어갈 때마다 대사도 맞추어주고 그를 뒤에서 응원하는 배려 깊은 여자이다.

재능 있는 화가인 희원과 재하, 그리고 영우 사이의 미묘한 신경전이 개입된다.

동성애를 연기해야 하는 재하와 영우는 작품이 몰입하기 위해 친밀감을 형성하여 가는데 이상한 기류가 펼쳐진다.

연기인지 진심인지 헷갈리기 시작했다.

재하는 영우는 키스를 하게 되고, 서로를 향한 사랑으로 치닫는다. 여기서 나는 모르겠다.

연기를 위한 몰입이 만들어낸 것인지, 아니면 이들이 동성애적인 성향이 있었던 건지,,막 헷갈리기 시작했다.

 재하는 혼란스럽고 희원에게도 냉소적이 되어갔다. 재하와 영우로 인해 상처받는 사람은 희원이었다.

희원은 재하가 작품에 들어갈 때마다 자신의 진짜 삶을 버리고 자신의 작품으로 인해 망가져가는 걸 지켜보거나 작품 속의 상대를 사랑하는 걸 지켜봐야 하는 것이 힘들었다고 한다.

재하와 영우의 역에 몰입해 갈수록 재하와 희원의 관계 역시 벼랑끝에 몰린다. 그 역할에 빠져 일상 속 자신의 모습을 잃어가는 재하를 묵묵히 응원해왔지만 영우와의 스캔들은  예상할 수 없는 충격을 안겨준다.

배우는 작품을 하는 동안은 현실 속의 자신은 없게 되는 건가?

그럼 현실 속에 관계를 갖고 있는 사람, 특히 희원처럼 사랑하는 연인은 '저렇게 고통스러울 수도 있는 것이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드디어 메소드는 무대 위에 올려지고, 정말 숨죽이며 영우와 재하의 소름 돋는 연기를 보게 된다.

혼란과 갈등속에서 이게 진심일까, 연기일까라는 수많은 기자들의 질문을 나도 던지고 있다.

연극은 무대위의 배우도 관중까지 다 긴장하며 숨죽이며 본다. 

영화와는 또 다른 순간순간이 실제상황처럼 열린다.

연극계 베테랑 배우 재하와 아이돌 스타 영우는 단순히 연기를 향한 열정인지 재하를 향한 진심인지 모를 집착을, 재하는 영우를 향한 끌림인지 연기를 향한 몰입인지 모호하게 이상하게 둘은 급속도로 가까워진다.

경계를 넘어선 거부할 수 없는 스캔들이 조성된다. 

극 중 캐릭터에서 벗어나면 공허하다고 말하는 배우들,

자유자재로 캐릭터 속의 자신과 실제 자신을 오간다는 배우들

작품과 현실을 오가는 그들의 삶을 엿본 것 같다.

실패한 자화상인 조각품, 손가락, 체인, 밧줄, 소품들이 이렇게 눈에 들어오긴 처음이다

배우들의 감정선, 눈빛 소름 돋을 정도였다. 완벽했다.

그러나, 도대체 재하가 가지고 다니는 그 책은 무엇일까, 그 안에 뭐가 적혀 있을까?

재하를 사랑해서 재하가 사랑하는 희원을 질투한다?

아니 진짜 영우는 재하를 사랑한 걸까? 아님 연기일까?

어디까지가 진심이고, 어디까지가 연기일까? 너무 많은 궁금증을 남겨주는 영화는 처음이다.

연극무대가 주는 몰입도도 좋았고, 배우들의 연기도 소름끼지게 좋았다.

단지 재하와 영우의 감정을 끌고 가는 것이 너무 매끄럽지 못하고, 결말도 아쉬웠다.

재하와 영우의 감정의 변화를 짜임새 있게 엮지 못하고 뭔가 자꾸 빠진 것 같은 것 같은 느낌을 지울 수가 없어 아쉬웠다.

박성웅과 윤승아의 연기야 많이 보아서 연기 잘하는 건 알고 있었지만, 오승훈이라는 신인의 연기가 이 정도라면 앞으로  명품 배우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posted by 해이든 2018. 12. 28. 21:11

영화 도어락
영화 도어락

솔직히 나는 공포물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공포물 애호가인 딸로 인해 가족과 함께 보게 되었다.

정말 내 의지가 개입된 거라면 그들과 가족이라는 관계 때문이다.

이 영화를 보고 도어록 소리에도 이 영화가 연상되어 좀 섬뜩하다.

그리고 청소하다 침대 밑을 내려다 볼수가 없다.

이런 걸 노린 거라면 어느정도 공포로서는 성공한 듯하다.

혼자 사는 여자에게는 권하고 싶지 않다. 혼자서 얼마나 무섭겠는가.

요즘 1인 가구의 수가 증가하면서 

혼자 사는 여자를 상대로 범죄가 나날이 늘고 있는 추세로

혼자  오피스텔에 살고 있는 직장인 경민은 집안에 누군가가 침입한 것 같아 불안한 날들을 보낸다.

도어록 덮개가 열려있거나

도어록에 묻어있는 지문 흔적들,

불안한 경민은 도어락 비밀번호도 바꾸어 보지만 불안한 마음을 쉽사리 떨치지 못한다.

도어락 덮개

그리고 자기 전 문 밖에서 도어록 버튼을 누르는 소리,

잘못 눌렀다는 신호음과 문고리를 잡아당기는 소리에

불안한 경민(공효진)은 잠시 후 밖에 나가 보지만 아무도 없다.

그리고 문 앞에 버려진 담배꽁초.

경찰에게 신고하나 별다른 방법이 없다고만 한다.

뭔가 일어날 것 같은 음향과 공포감은 시작되고,

그녀는 관리에게 혹시 cctv를 볼 수 있냐고 물어보지만,

엘리베이터만 확인할 수 있다고 말하며

술 취한 사람들이 가끔씩 착각하고 다른 집 도어록을 누른다고 말해준다.

은행에 다닌 경민은 실적을 내기 위해 남자 손님에게 친절하게 대하는데,

이를 오해한 남자 손님이 치근 적단다.

경민은 죄송하다고 거부의사를 표하자 김기 정이라는 그 남자는 돈 없다고 무시하냐고 거칠게 나온다.

그리고 퇴근 후 그 남자는 경민에게 차 한잔 하자고 추근덕 거리고

난처한 상황에서 은행 과장이 그녀를 위기로부터 구해 주고 차로 오피스텔까지 태워다 준다.

불안에 떠는 그녀는 호의를 보이는 은행과장마저 스토커로 오인하여 신고까지 하게 된다.

 

경찰에 신고한 그녀

그녀의 잦은 신고로 귀찮아하던 경찰은

남자 친구가 해줘야 될 일은 경찰을 자꾸 부른다고

성가시게 여기고 같이 동행하는데 현관문을 연 순간.....

아침에 일어나면 개운하지 않고,

누군가 자꾸 침입한 흔적은 있고,

그리고 일어난 살인사건에 오히려 그녀가 살인 용의자로 수사선상에 놓여 조사를 받게 된다.

그리고 집 안에서 청소하다 발견한  마스터키 카드의 실체를 쫒는 그녀!

그리고 들어간 오피스텔에 시체처럼 누워있는 여자,

자신의 주위를 맴도는 보이지 않는 침략자에 대한 두려움과 공포로 그녀는 이사를 간다.

공효진

현실 공포를 담아냈기에 혼자 사는 여자를 겨냥한 범죄들이

많은 현재에 일어날 법한 일이기에 더 몰입되었다.

그런데 짜증 나는 것은 왜 공효진 혼자 움직이는지,

경찰은 왜 또 혼자 가지... 아흐 영화지만 짜증 났다.

솔직히 도어록 하나로 외부의 침입을 방어해야 하는 허술함이 솔직히 더 무서웠다.

의존해야 하는 침입,,,

혼자 사는 여자를 보호하는 장치가

고작 도어락 하나에 의존해야 하는 사회적 불안감이

만들어낸 현실적인 공포를 자아냈고 더 크게 증폭시켰다.

혼자 사는 걸 적극 반대하고 나서야 하나?

그리고 이런 공포물은 반전이 있어야 대박인데 솔직히 범인이 너무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경민의 답답한 행동, 계속 죽자고 대책 없이 덤비는 무모한 사람 같았다.

조카가 이 영화를 보고 원룸에 이사 가자마자 침대 밑을 확인했다는 소리를 듣고

영화를 본 입장에서 충분히 이해가 되었다.

사운드나 인물들의 연기는 좋았다.

그러나 구성이나 스토리가 자연스럽게 연결되는 느낌이 나지 않았다.

그리고 범인을 몰고 감에도 좀 억지스럽고 유치했다.

반전 같은 것은 없었다.

좀 눈치가 빠른 사람이라면 단번에 범인을 알아차리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posted by 해이든 2018. 12. 24. 18:16

 

영화 로맨틱 홀리데이

# 영국집

해마다 돌아오는 크리스마스, 이 맘 때면 여러분은 어떤 영화를 떠올리는지? '나 홀로 집에', '러브 액츄얼리'...

나름대로의 취향대로 기억에 자리 잡은 영화 한 편쯤은 있겠지만, 내게는 2006년도 작품으로 벌써 12년이 지난 '로맨틱 홀리데이'라는 로맨틱 코미디 영화이다.

지금 봐도 어색하거나 촌스럽지 않음을 가지고 있다.

사랑은 어떤 모습으로든 시간이 지나도 설렘을 자극하는 충분한 자양분이 되어주기 때문이다.

카메론 디아즈와 주드 로, 케이트 윈슬렛과 잭 블랙이 출연한 영화이다.

L.A에 사는 아만다(카메론 디아즈)와 영국에 사는 아이리스(케이트 윈슬렛)가 '홈 익스체인지 휴가'로 서로의 집과 차를 바꿔 2주의 크리스마스 휴가를 보내게 되면서 만나게 되는 인연과 사랑을 담아가게 된다.

L.A에 사는 아만다는 영화 예고편을 제작하는 회사 사장으로 일에 중독된 커리어 우먼이다.

돈, 인맥 등 부족할 것 없는 그녀였지만 같은 회사의 남자 친구가 바람이 나고, 이런 상황이 너무 싫은 그녀는 혼자만의 크리스마스 휴가를 지낼 생각으로 사이트를 검색하다 '홈 익스체인지'란 사이트를 발견하고, 거기서 영국의 예쁜 오두막집을 보게 된다.

정말 동화 속 그림 같다.

아이리스의 영국집

휴가 계획을 세우던 차에 우연히 '집을 바꾼다'는 설정에 매료되어 영화 제작을 하게 됐다는 감독처럼 나도 이 부분이 정말 매력적이었다.

현실에서도 가능할까? 지금이라면 가능할지도 모르겠다.

일에 미쳐있는 사람은 모든 것을 미루고 여행을 가는 게 쉽지 않다. 아만다 같은 사람은 거의 일중독자에 가깝다.

그런 사람이 2주간의 휴가를 결정한다는 것은 현실에 너무 지쳤고, 쉼이 필요하다는 신호였다.

돈, 직업, 성공으로도 채워지지 않는 자신의 허기는 사랑이었다고 생각했지만 사랑에 번번이 나가떨어진다.

온전히 남자 없는 행복을 채울 계기로  휴가를 결정하지 않았나 싶다.

사람들은 자신 안의 상처를 덮으려고만 하지 자신 안의 상처와 대면하지 않는다.

왜 그럴까?자신의 초라함을 들여다보고 싶지 않은 두려움일 수도 있고, 외면하고 싶은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런 휴가나 여행이 스스로에게 말을 걸 수 있는 계기가 되어 줄 것이고, 오로지 자신을 정화할 수 있는 원동력을 줄 것이라 믿는다.

상처는 치유해야 하고, 그래야 또 다른 사랑을 하든 사람들의 관계 속으로 들어갈 수 있다고 본다.

삶에서 사랑만큼 중요한 것도 쉼이라 생각하는 사람이다.

영국의 예쁜 오두막집 아이리스의 집으로 날아간 아만다, 6천 마일이나 떨어진 곳으로, 서로의 집을 바꿔 생활하게 된다.

쥬드로와 카메론 디아즈

영국으로 온 아만다는 여동생의 집에 불쑥 나타난 아이리스의 오빠 그레엄(주드 로)과 만나게 된다.

그리고 첫눈에 호감을 느낀 둘은 거리를 두면서도 자꾸 끌리게 된다. 그레엄은 두 딸을 키우는 아빠이다.

남자 혼자 딸을 키우는 아빠 치고는 너무 매력적이다.

특히 미소! 이때 주드 로가 가장 매력적이었던 것 같다.

사랑에 상처 받은 사람은 또 다른 사랑으로 치유된다더니, 자신도 모르게 그레엄에게 빠져든다.

자신의 가치를, 자신의 상처를 알아주는 사람에게 마음을 내 던져버린다.

그녀는 완벽해 보이지만  따뜻함을 받지 못했다. 그런데 두 아이를 따뜻하게 키우고 있는 그레엄에게서 따뜻함을 느끼게 된다.

그레엄의 사랑스러운 아이들까지! 이 영화는 겨울이지만 따뜻한 풍경이 있고, 쥬드 로와 카메론 디아즈의 사랑에 흠뻑 젖어 버렸다.

 

#. 미국 L.A

영국에 사는 아이리스는 예쁜 오두막집에 살고 있다.

웨딩 칼럼을 연재하는 그녀는 한 사람만을 사랑했지만 그는 자신이 아닌 다른 여자와 약혼을 발표한다.

마음에 상처를 받은 그녀는 남자를 원망하기보다 자신이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순수한 여자다.  

아이리스는 그 남자도 자신을 좋아한다고 생각했다. 아이리스가 자신을 좋아하는 걸 알면서 그 남자는 아이리스의 그 심리를 이용하는 나쁜 남자다.

케이트 윈슬렛과 잭블랙

그녀는  다른 삶을 살고 싶은 마음으로 여행을 떠나기로 하고, L.A의 아만다의 집으로 간 아이리스는 아만다의 친구인 마일스 (잭 블랙)을 만나게 된다.

유명한 영화음악 작곡가인 마일스도 자신의 여자 친구가 다른 남자와 바람을 피웠다는 사실을 알고 상처를 받았다.

무언가 서로 통하는 면이 있다.

마일스는 아이리스의 상처에 위로와 사랑을 건네며 가까워진다.

친근하고 유머감각과 따뜻한 마음씨를 가진 마일스는  따뜻하고 순수한 아이리스의 내면의 가치를 들여다봐 주는 섬세한 사람이다. 그렇게 둘은 진심으로 서로에게 특별한 감정들을 가지게 된다.

"남자에게 항상 상처를 받는 건 내 쪽이면서도, 내가 잘못한 게 없는지, 혹시 오해한 건 없는지, 곱씹어가며 나를 상처 주고는 내 탓 인양 그래 왔어요. 끝까지 착각을 해 가면서 말이죠."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던  아이리스는 그동안  너무 어리석었던 자신을 깨닫고, 자신을 사랑하는 척 자신을 이용하는 그 남자를 향해 "당신.. 날 이용해왔어.... 꺼져!라고 말을 한다. 속이 시원했다.

L.A 아만다집

 

일상에 지치고 사랑에 상처 입은 여주인공들이 2주간의 휴가로 자존감을 회복하고, 그들의 삶과 사랑을 바꾸게 하는 영화이다.

이 특별한 휴가가 삶의 전환점이 되어 자신이 의식하지 못한 자신들의 가치 코드를 찾는 출발점이 되어 주었다.

크리스마스 산타의 선물 같은 휴가라고 생각한다.

겨울이기에  눈이 덮인 환상적인 풍경, 마을 전체가 눈이 덮여 있는 영국의 아이리스의 집과 동네는 내게 크리스마스 때 가보고 싶은 욕구를 가지게 하는 곳이다. 

마치 주드 로 같은 오빠가 있을 법한 그 예쁜 오두막집을 크리스마스 때면 잊을 수가 없다.

셰익스피어는 말했다. 여행의 종착역이 곧 사랑이라고... 사랑하면 눈이 먼다는 말도 있다... 그 말 또한 만고불변의 진리다.

 아이리스의 말처럼 사랑하면 여자들은 왜 그 사람이 바람둥이인걸 알면서도 또 사랑에 빠지는 걸까요? 

posted by 해이든 2018. 12. 20. 17:17

 

미국과 국경을 맞댄 멕시코에는 세계 최대 마약의 도시 '후아레즈'가 있다. 이곳은 멕시코 마약 카르텔의 조직이 지방정부의 힘을 능가하는 조직력과 막강한 전투력을 가지고 멕시코 정부는 물론이고 미국 정부에 위협을 가하고 있다.

실제로 후아레즈는 세계의 살인 도시라 불리울 정도로 위험하고 수많은 사람들이 살해되거나 사라지는 등 상상초월의 범죄들이 일어나는 곳이다.

경찰 군대를 동원하여 소탕하려고 하지만 그들의 세력은 갈수록 거대해지고 미국마저 상당한 부담을 안고 있다.

미국 내 마약중독자들이 늘고, 그로 인한  범죄도 꾸준히 증가하여  국가 질서를 무너지게 하는  멕시코 마약 카르텔을 소탕하기 위한 작전이 시작된다.

드니 빌뇌브 감독은 세계에서 가장 악명높은 멕시코 후아레즈를  배경으로  긴장감의 끈을 놓을 수 없게  범죄 스릴러로 우리를 숨 막히게 할 것이다.

하나의 작전안에서 조금씩 다른 태도와 목표를 두고 있는 세 인물

CIA 소속 작전 총책임자인 맷(조슈 브롤린)은  FBI 요원 케이트(에밀리 블런트)를  작전에 투입시킨다. 그리고 동행하는 정체불명의 남자 알레한드로(베니치오 델 토로), 맷은 알레한드로를 케이트에게  "우리 사냥개"라고 소개한다. 여기에서 이 사람을 왜 사냥개라고 소개했는지 영화를 다 보고 난 사람은 알게 된다.

영화 초반부, 서로에 대한 정보도 믿음도 없이 작전에  들어선 케이트의 시선으로 몰입하면 처음에는 너무 답답하다. 왜냐하면 그녀도 모르니까,

시체를 난도질해 전시해 놓는 짐승의 도시에서 맷과 알레한드로는 케이트에게 작전에 대한 제대로 된 설명도 해주지 않고, 그저 뒤에서 보고 배우라는 식의 태도로 케이트의 심기를 불편하게 한다.

맷은 '케이트를 왜 이 작전에 끼게 했을까' 라는 궁금증이 인다. '전투력이 필요했다면 남자들도 많았을텐데'하고 말이다.

케이트는 자신만 소외당하는 느낌을 가질 수 밖에 없다. 그렇게 균열의 조짐이 보이던 그들은 끝내 마찰을 일으키고 부딪힌다. 그리고 케이트는 자신이 이용당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들이 상대해야 하는 자들은 법 안의 테두리에서 움직이지 않는다. 법 위에 앉아 있다. 마약 카르텔조직은 마약으로 벌어들인 막대한 자본으로 그들은 정부, 경찰, 군대까지 손이 안 뻗은 곳이 없고, 그들의 무기는 이미 막강한 군사력까지 갖추고 있다. 

아내의 목을 자르고 딸을 염산통에 처넣은 놈을 찾기 위해서 알레한드로는 복수할 기회를 주는 곳이라면 어디에나 붙을 수 있다. 법의 테두리 따윈 통하지 않는 마약 카르텔 조직에게 더 악으로 대응하여  그들의 모든 걸 가져오려는 복수심으로 이 작전에 기꺼이 사냥개가 된다. 맷은 그의  복수를 위해 자리를 마련해 주고 알레한드로를 이용하여 마약 카르텔을 소탕하면 되는 것이다.

세계에서 가장 위험하고 악명높은 이 곳에서  법의 테두리라는 형식적인 것은 통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명분은 항상 필요하게 되어 있다. 그 명분을 만들기 위해서 그녀가 필요했던 것이다.

맷은 자신들이 하는 작전이 절차적이었는지 확인서에 서명을 해 줄 사람이 필요했고  그 형식적인 절차에 서명해줄 사람으로 케이트를 이용한 것이고, 케이트는 자신이 이용당했다는 것을 알고도 손 떼지 않고 끝까지 가본다. 어차피 목표는 같기 때문이다.

조슈 브롤린과 베니치오 델 토로

악은 악으로 응징하겠다는 그들의 방식에 케이트는 동조하지 않는다.

알레한드로는 "시계의 구조를 알려고 하지 말고 시계바늘이 가리키는 것을 보라"

맷은 "전체 인구 20%의 마약중독자들에게 마약을 끊게 하지 못할 거라면 질서라도 필요한 거야.그를 찾는 건 백신을 발병하는 것과 같지"

마약운반책으로 경찰을 이용하는 카르텔과 부패한 멕시코 경찰들을 적으로 간주될 만큼 무법지대인 후아레즈에서 그들을 소탕한다는 것은 법의 테두리라는 경계나 질서 따위가 먹히지 않는다.

혼돈의 국경지대 후아레즈는 정의가 실현될 수 없는 짐승의 도시로 마약조직들의 살인과 폭력은 경계를 넘어 질서를 무너뜨리고 있다.

법의 테두리를 벗어나는 알레한드로, 그의 모든 행동을 묵인하며 임무만을 위해 움직이는 맷, 정의와 룰에 따른 원칙주의자 케이트, 세 배우의 감정선과 심리전, 한시도 눈을 뗄 수 없는 일촉측발의 무법지대 안에서의 긴장감은 손에 땀을 쥐게 한다.

알레한드로는 형식적인 서명을 받아 이 사건을 마무리 지으려고 케이트를 찾아간다.

"당신은 늑대가 아니오. 지금 이곳은 늑대들 소굴이오....작은 도시로 전출 가시오, 법이 아직 살아있는 곳으로.."

CIA소속 작전 총 책임자인 맷

우리가 살아가는 곳에서 법의 테두리는 얼마만큼의 원을 그려 놓고 있을까?

권력을 쥔 사람들이, 법을 만드는 계층들이, 이미 악과 결탁하여 울타리의 범위를 맘대로 조정하여 그들을 변호하고 있다면, 그들을 위장시켜 주고 있다면, 늑대들에게 양을 내어주는 양치기와 같다면, 양들을 지켜줄 테두리는 안전한 것인가? 그들은 양들을 잡아먹기 위해 경계를 넘나들고 있다. 이 혼란 속에서 정의가 무엇을 해 줄 수 있단 말인가?

법의 테두리 안에서 살아갈 수 있는 사람들과 살아갈 수 없는 사람들의 공존을 정의로 지켜줄 수 있을까? 무법지대에서 자신을 지켜줄 건 악과 손 잡거나, 폭력으로 맞서야 지킬 수 있거나, 아님 떠나야 한다. 법이 가능한 곳으로 ...생존을 위해 목숨을 걸고 떠나는 난민처럼.....

악을 상대함에 있어 선이 얼마나 나약한지를 느꼈다면 너무 슬픈 현실이 아닌가?

실제로  마약카르텔은 멕시코의 정치인들까지 살해하고 있다. 자신들의 세상을 만들려고 한다. 자신과 뜻이 다르거나 거부하는 후보를 무자비하게 살해하고  있다. 정말 무법지대이다. 사람들이 다 떠나고, 경찰도 지원하지 않는 도시가 되어버리고 있다.

 FBI요원 케이트 역 '에밀리 블런트'

감독은 우리에게 질문을 던지고 있는 것인가? 아니면 생존을 위한 답을 주고 있는 것인가?

그리고 우리게에 저 세 사람 중에 무엇이 옳은가를 묻고 있는 것인가?

posted by 해이든 2018. 12. 18. 12:58

연애세포는 죽지 않는다는 걸 보여주기라도 하듯, 멜로나 로맨스물에 구미가 당긴다.

그럴 때마다 끄집어 다시 볼 수 있는 영화는 무수히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프 온리'를 끄집어냈다.

길 정거 감독의 2004년도 작품이다.

영화 이프 온리

내 기억으론 여주인공 '사만다'역을 맡은 제니퍼 러브 휴잇이  평범해 보여서 더 정감 있게 다가온 줄도 모르겠다.

남자들은 여자와는 다르게 여러 가지를 한꺼번에 하지 못한다. 이런 것들이 남녀관계의 불협화음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사랑만 쫓아다니며 살 수는 없다. 먹고살아야 하는 문제가 중요하지만 일에 지나치게 몰입하는 것은 사랑으로 가는 통로를 때로는 막아서고 무관심으로 방치할 때도 있다.

사랑하는 연인이 있다. 이안(폴 니콜스)과 사만다(제니퍼 러브 휴잇)

이안은 회사 일로 사만다에게 신경을 쓰지 못한다. 바쁘고 힘들어서 사만다를  자주 서운하게 만든다.

그의 생각은 온통 일에만 머물러 있고, 회사 프레젠테이션에 정신이 팔려 사만다의 졸업연주회가 있다는 걸 잊는다.

나쁜 의도가 아니라 바쁜 건 알겠는데, 이안에게 자신은 매번 2위라는 사실이 서운하다.

그리고 이안은 그런 자신을 이해하지 못하고 자신만 투정대는 사람이 되는 것 같다.

"나는 내가 너한테 항상 두 번째라는 게 너무 가슴 아파. 더 비참한 건 거기에 익숙해지고 있다는 거야. 난 사랑받고 싶을 뿐인데"

이 느낌은 연인이나 부부 사이에도 똑같이 적용된다. 서운하다가 비참해지다가 그러다 익숙해지고 또, 그러다 포기하는 일련의 과정을 통해 사랑은 잠식된다.

그날도 이안은 회사에서 중요한 PT 중이다. 그런데 사만다가 들어와 자리를 망치고 만다.

둘은 말다툼을 하고 차를 타고 가는 그녀를 잡지 못하는 그 순간, 사만다가 탄 차가 트럭과 충돌하여 사만다는 저 세상으로 떠나 버린다.

교통사고로 그녀가 떠나고 이안은 슬픔에 빠진다. 이미 후회해도 소용없는 일, 소중한 사람이라는 걸 우리는 잃고 나서 깨닫는다.

항상 옆에 있을 것만 같은 사람이 갑자기 곁에 없을 때 가슴 시리게 아픈 일이다. 진심으로 사랑을 담아내지 못한 이안의 입장에서 더 그럴 것이다.

항상 같이 있을 거라고 여기고 내일로 미루어만 온 발길들이었는데, 이렇게 갑자기 떠나 버린다면, 이안은 밤새 울면서 후회한다.

지금이 아니면 모든 것이 늦는다는 걸, 줄 수 있을 때 주어야 했던 것들 앞에서 좌절하며 잠이 든 이안은 다음날 아침 깜짝 놀란다. 자신의 옆에 사만다가 자고 있는 것이다.

폴니콜스와 제니퍼 러브 휴잇

 

단 한 번의 기회가 그에게 생긴 것이다. 어제와 똑같은 하루가 주어진다.

사만다에게 이안은 묻는다. "하루 밖에 못 산다면 뭘 하고 싶어?"

그녀를 위한 시간을 보내고 싶은 이안, 지금 이 순간을 그녀만을 위해 소중하게 쓰고 싶은 이안의 질문에 그녀는 답한다.

"질문이 너무 쉽네. 당신이랑 보내야지."

너무 당연한 걸 묻는다는 표정의 사만다. 남자들은 여자들이 거창한 무엇인가를 바란다고 생각하지만 여자가 남자에게 바라는 건 같이 있어주는 것이다. 그저 사랑하는 마음 하나만 보여주면 되는 것이다. 같이 공유하는 삶이 얼마나 값진 사랑인지를 여자들은 수시로 남자에게 일깨워주지만 알 아차리 지를 못한다. 그저 익숙함에 묻어가려고만 한다.

If Only 주인공

그런 면에서 택시기사는 남자 이안이 깨닫지 못하는 걸 일깨워 준다.

"그녀를 잃는다면 감당할 수 있겠소? 그럼 답이 나왔군. 계산 없이 사랑하시오."

아픈 상처를 드러내는 게 두려워서 자신의 과거를 돌아보지 않은 이안, 자신의 과거 이야기를 한 적 없는 이안.

그 남자의 과거가 현재보다 중요하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연결고리 같은 것이다. 그 남자를 사랑하면 그의 주위 사람들에게도 관심이 가는 것이고, 그러면 당연히 그의 어린 시절과 부모와 모든 걸 알아가는 과정도 사랑 안에 들어가는 일부로 말이다. 그가 뚝딱 현재의 모습으로 태어나지는 않았을 것이 아닌가.

현재는 자신과 함께 하지만 자신이 함께 하지 못했던 그의 삶이 궁금한 것은 연인으로서 당연한 일이라고 여긴다. 그런데 그가 자신의 과거를 한 번도 이야기하지 않았던 것은 분명 사만다에게는 슬픔이었을 것이다. 그 사람이 포장한 인생 안에 어떤 아픔이 있을지 모를 상황에서 상처를 내기 싫어 마음을 열어주기를 기다렸을 것이다.

진정한 사랑을 깨달은 이안

사랑은 했지만 제대로 사랑을 표현하지 않았고 계산적이었던 이안, 그런데 사만다가 이렇게 갑자기 자신을 떠날 거라는 걸 생각조차 하지 않았던 이안, 그에게 다시 주어진 하루, 그녀를 살릴 수 있다면.... 시간이 별로 없다.

어제와 다른 행동으로 변화를 주어 보지만 운명은 바뀌지 않는다.

나중에 라는 말을 자주 쓰는 나에게도 이 영화는 내 옆에 있는 존재에 대한 배려와 표현에 대해 많은 생각을 갖게 만들었다. 지금도 안 되는 것이 나중이라고 될까? 현재도 못 지키는 사람이 내일을 지킬 수 있는 걸까?

이안은 표현하지 않았던 '사랑해'라는 말을 하고 사랑고백도 한다.

" 오늘 너에게서 배운 것 덕분에 내 선택과 내 삶이 완전히 달라졌어. 네가 5분이든 50년이든 네 인생을 제대로 살았다는 것을 배웠어. 오늘 네가 아니었다면 난 영원히 사랑을 몰랐을 거야. 사랑하는 법을 알려줘서 고마워. 사랑받는 법도."

우리도 이안처럼 오늘이 마지막인 줄 알았다면 사랑하는 연인에게 최선을 다했을 것이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우리는 우리의 마지막을 모른다. 그래서 매번 순간에 충실하라는 말들을 하는 것이리라.

그저 마음 가는 대로 사랑한 사만다로 인해 이안은 진정한 사랑을 배웠고 , 진정한 사랑은 시간에 관계없이 마음에 있는 것이라는 걸 말이다.

나도 사만다처럼 그저 사랑받고 싶을 뿐이다.

If Only.... 거짓말처럼 사만다가 곁을 떠났고, 이안은 사만다처럼 마음 가는 대로 사랑하면 된다는 걸 알게 되었다.

택시기사의 말처럼 그녀를 가졌음에 감사하고 계산하지 말고 사랑하면 된다.

사랑하는 사람끼리  많은 걸 나눌 수 있음에 감사하고, 함께 있는 것에 감사하며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건 서로를 사랑한다는 마음을 보여줄 수 있음에 감사하라는 것이다.

마음을 다해 사랑하면 될 일이다. 순간순간 함께 하는 것을 감사하면서 말이다.

사랑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사랑하는 방법도 중요함을 일깨워주는 영화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