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by 해이든 2019. 8. 6. 15:19

감독 이안

색, 계

욕망이란 뜨겁고 위험한 색, 色

신중하면서 , 그 잔인하고 차가운 경계, 戒

감정과 이성의 경계가 시간이 흐를수록 흔들리고 色으로 戒가 무너진다.

 

<색, 계>는 '탕웨이'와 '양조위'의 파격적인 노출 연기가 논란이 된 영화이기도 하다.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면서 제국주의적 일본의 침략으로 인한 1939년 중국 홍콩과 1941년 상하이를 배경으로 친일파로 살아가는 정보부 대장 '이'와 그에게 접근하여 그를 암살하려는 '왕치아즈'가 色으로 인해 戒가 무너지면서 극으로 치닫는 그들의 운명을 다룬 이야기이다.

 

1939년 홍콩,

홍콩대에 다니는 왕치아즈는 광위민에게 끌려 저항 연극을 하게 되고, 첫 연극이 관객들의 뜨거운 호응을 얻으며 성황리에 끝나자 왕치아즈와 연극단원들은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저항 연극의 성공에 힘입어 학생신분이었던 그들은 투쟁의 일환으로 그 범위를 넓혀 홍콩으로 온 친일파 관료 '이'를 암살하고자 계획한다.

 

그들은 홍콩 상인과 그의 아내 막부인으로 신분을 위장하여 '이'의 아내에게 접근한다.

왕치아즈에게 '이'의 존재는 이 때만 해도 그저 경계할 암살 대상일 뿐 감정이 개입되지 않았다.

그저 신분위장한 막부인이란 연기에 집중하면 되었다.

 

친일파 관료였던 '이(양조위)'는 예리하고 치밀한 인물로 아무도 믿지 않았으며 경계를 풀지 않았다.

하지만 '이'는 왕치아즈의 두려움 없는 눈빛에 서서히 호감을 드러냈다.

연극단원들은 그녀가 '이'와 성관계를 가질 것을 대비해 첫 경험이 없는 그녀에게, 성관계를 미리 연습하게 했고, 그녀와 관계를 가질 남자는 광위민이 아니고 유경험자인 연극단원과 가지게 된다. 왕치아즈는 광위민에 호감을 가지고 있었다. 이왕 하는 거라면 호감을 가진 광위민이었으면 했지만 광위민은 나서지 않았다.

연극단원과 관계를 가지고 난 후 그녀는 방에서 나오지도 않았고 먹지도 않았다. 그녀를 그렇게 몰아넣은 단원들과 어색하고 껄끄러운 거리감이 생겼다.

그녀 혼자 이에게 접근해 연기를 하는 동안 연극단원들은 지켜만 봤다.

경계를 풀지 않는 '이'로 인해 뜻대로 일은 진행되지 않았고, 이가 다시 상해로 돌아가는 바람에 계획은 실패로 돌아가게 된다. 그녀는 망연자실한다.

대학생이었던 왕치아즈가 막부인으로 신분위장을 하는 순간 그녀는 色을 미끼로 유혹하여 그를 암살하려 했지만 '이'를 암살하기 위한 色은 시도도 못하고 같은 단원에 의해 처녀성만 상실했다. 연극단원들과 다시 현실로 돌아가기에는 너무 멀리 와버렸다.

거기다 광위민과 연극단원들의 계획을 눈치챈 광위민의 선배가 찾아오고, 발각된 일로 인해 선배와 말다툼 끝에 단원들은 선배를 살해하게 된다.

상처와 좌절,수치심으로 얼룩진 그녀의 계획은 실패하고 왕치아즈는 그 길로 그곳을 떠나버렸다.

그 일이 있고 난후 왕치아즈는 넋이 빠진 채 텅 비어 버린 것처럼 3년의 시간을 보냈다.

 

 

3년이 흐른 후, 때는 1941년 일제 강점기의 중국 상하이, 광위민이 그녀 앞에 나타난다.

다시 만난 광위민의 제안으로 저항군의 협조 아래 3년 전에 실패한 정보부 대장 '이'를 암살하려는 계획을 다시 세우게 된다.

이는 그동안 일본군의 감시견이 되어 반일인사들을 닥치는 대로 잡아다 살해했고, 경비는 더 삼엄하여 접근조차 불가능한 위치에 올랐다.

왕치아즈는 어리석었던 3년전과는 다르게 밀수 장사를 하는 막부인으로 철저하게 신분을 위장해 '이'에게 다시 접근한다.

3년 전에 막부인에게 호감을 가지고 있었던 '이'였다. 막부인은 이에게 줄 선물을 준비하지 못했다 하자 이의 입에서 "당신이 와 준 게 선물이오"라는 말이 흘러나왔다.

그녀에게 본능적으로 끌렸던 이의 경계는 쉽게 무너질 거라는 예상이 드는 대사였다.

 

 

그가 막부인을 밖으로 불러 가진 첫 정사신은 굉장히 거칠고 폭력적이었다. 그녀의 몸을 가지면서도 그녀의 진심을 뚫어지게 파고들며 그녀를 강압적으로 제압했다.

색으로 유혹하려던 막부인의 계획 안으로 이가 첫발을 내디뎠다. 경계가 일단은 풀렸다는 것에 그녀는 엷은 미소를 띤다.

막부인은 그의 집에 기거하고 이에게 더 깊숙이 접근해 들어갔다.

 

 

그는 뼛속까지 잔인한 사람이 아니다. 친일파로 살고 있지만 그는 누구보다 겁이 많고 여린 사람이란 걸 알 수 있다.

그의 외로움을 안 왕치아즈는 "많이 외로웠겠어요"라고 말하자 그는 "그 덕분에 살아있지"라고 말한다.

그는 친일파로 사느라 모든 이의 표적의 대상이었고, 그로 인해 그는 누구보다 외롭게 지낼 수밖에 없었다. 그 내면의 공허감은 누구보다 깊었다.

그가 초조하고 불안한 자신의 내면을 숨기면 숨길수록 가슴의 공허가 깊고 자신이 살아있다고 느낄 만큼 그녀를 통한 성적 탐닉으로 파고든다.

그녀의 말처럼 "그는 내가 매번 내가 피를 흘리고 고통의 비명을 질러야만 만족해요. 그때 자신이 살아있다고 느끼죠."

두려움이 가득 찬 자리에 욕망이 들어가 그녀를 삼킴으로써 그는 자신의 존재감을 느끼는 것이다. 그녀를 파고드는 깊이가 깊을수록 그의 공허는 컸을 것이다.

 

 

"날 안을 때마다 그는 마치 뱀처럼 내 안으로 파고들어요. 내 심장까지"

그녀가 진심인지를, 진짜 감정인지를 예리하게 파고들었다.

서로의 몸이 엉켜있는 침대에서 더 강렬하고 차갑게 소름이 돋을 정도로 매섭게 그녀의 흔들리는 마음이나 눈빛, 작은 움직임 하나도 놓치지 않으며 간파하려 했다.

 

나는 그 둘의 정사를 결코 뜨겁게만 받아들일 수 없었고, 달콤하게 받아들여지지 않고 아슬아슬하게 느껴졌다.

뜨거운 육체가 서로 엉키는 순간에도 매서운 눈빛이 서로의 심장을 치명적으로 파고들어 찔러대는 모습이었다. 지독한 공허를 성적 탐닉으로 보상받으려는 처절한 몸부림 같았다.

 

색으로 포섭하려던 戒는 잠식되어갔다. 이의 경계는 무너지고 막부인은 이제 연기가 아닌 실제로 진심에 가 닿게 된다. 이제 혼란스럽고 두려운 건 왕치아즈였다.

 

저항군은 빨리 이를 제거하지 않고 왕치아즈를 최대한 이용하여 그에게 빼앗긴 무기들을 찾아내려는 계획을 설계하고 무기 정보까지 얻어내려 했다.

하지만 광위민은 왕치아즈가 전문요원이 아니라 감당하지 못할 거라고 만류하지만 저항군 대장은 이의 신뢰를 얻는 데 성공한 왕치아즈를 최대한 활용하려고 할 뿐 그녀의 안위는 안중에도 없다.

하물며 저항군 대장은 그녀에게 조직, 지도자, 국가에 대한 충성심을 명심하라고 요구하며 "그의 마음을 확실히 사로잡아"라고 말한다.

"뭐로 사로잡아요. 내 몸으로? 당신은 그를 몰라요.. 연기라면 그가 몇 수 위죠."

그녀는 조국이나 국가에 대한 충성심 따윈 모른다. 그녀는 처음 광위민에 대한 호감으로 암살 계획에 가담했고 지금 자신의 마음은 이로 인해 흔들리기에 두려웠다. 처음 그녀는 이 앞에서 두려움이 없었다. 이에 대한 감정이 없었기에

하지만 지금 이에 대한 복잡한 감정이 심장까지 스며들었다.

연기에 있어서 막부 인보다 이가 한 수 위라는 걸. 가까이서 겪은 그녀만 알 수 있는 것. 연기는 통하지 않았기에. 막부인은 연기가 아닌 이에게 빠져든 진짜 욕망을 표출해야만 했다.

자신의 역할에 미치도록 빠져든 막부인, 그녀를 집어삼킬 듯 달려드는 이에게 연기는 실제처럼 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는 내 반응이 가짜가 아니란 걸 알아요 이러다 사로 잡히는 건 내가 되고 말 거예요."

이미 戒를 계획했던 왕치아즈는 사라졌고, 막부인으로 色만 남아있다. 그녀에게도 色은 더 이상 미끼가 아닌 본능 그 자체로 변해가고 있다는 것.

"점점 두려워져요. 마침내 그가 내 심장에 들어오는 순간 내내 구경만 하고 있던 당신들이 뛰어 들어와서 그의 머리를 쏴버릴까 봐."

이제 두려움의 위치가 바뀌었다. 저항군의 압박은 강해지고 둘의 관계는 깊어져 이미 경계는 무너졌고, 그녀는 이제 뜨거운 욕망으로 심장까지 내려가 있는 이를 저항군이 죽일까 봐 두려운 것이다. 그녀의 가슴에 그 뜨거운 불꽃의 감정이 들어와 버린 것을.

 

치명적일 정도로 뜨겁고 고통스러울 정도로 솔직한 육체적 교감을 나눈 이와 가까워질수록 두려움이 스며든다.

그들이 이를 암살하려는 시간을 지연시킬수록 그녀의 욕망이 그가 아닌 자신을 삼켜버릴 것이다.

두려움이 없던 치아즈는 없고 이에게 무너진 막부인만이 있었다.

 

이는 왕치아즈에게 6캐럿짜리 다이아반지를 선물해주고 저항군은 바로 그 순간 그를 암살할 계획을 가지고 , 다이아반지는 관심 없고 반지를 끼고 행복해하는 그녀의 모습을 보고 싶어 하는 이.

내적 갈등하는 왕치아즈.

저항군은 그녀를 그저 이용도구로만 여겼지만 이에게 왕치아즈는 특별한 존재였다. 자신의 존재감을 느끼게 해주는 이의 사랑 앞에 무너진다.

그와 관계가 깊어질수록 이에게 몸과 마음이 완전히 점령당했다.

이에게 특별한 건 왕치아즈이지, 다이아가 아니라는 사실, 자신이 지켜줄게라는 말에 그녀의 갈등은 멈추고 자신을 버리고 그를 지키기로 결정했다.

그녀는 저항군의 암살 신호를 알리며 그에게 도망치라고 말한다.

이를 간파한 그는 총알같이 몸을 날리다시피 차에 올라타고 그곳을 빠져나간다

그가 몸을 날려 차 안까지 뛰어들 때까지 단 몇 초도 걸리지 않았다. 총알처럼 뛰어나가는 모습에서 그의 두려움이 얼마나 컸는지 그의 삶이 애처롭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는 도망가지도 자결도 하지 않고 유유히 적진의 입으로 들어갔다. 연극단원과 같이 잡혀 죽음을 맞이한다.

연극단원들과 총살 직전에 선 그녀의 표정은 그를 죽이려 했던 동지들과 그곳에 같이 있다는 것에 두려움 없이 받아들이고 있었다.

이의 부하는 이미 치아즈의 정체를 알고 있으면서도 이에게 보고하지 않았다. 이가 포섭되었을지도 몰랐다고 말한다. 부하들마저도 그를 의심하고 감시하고 있었다. 자신의 부하로부터도 감시의 대상으로 사는 이의 존재,

그녀를 비롯한 연극단원들에게 총살을 명령하고 이는 그녀가 머물렀던 침대에 앉아 쓸쓸하고 공허한 표정으로 앉아 있는다. 영화는 끝이 났다.

암울하기만 했던 시대, 두 사람의 사랑은 비극으로 끝났다.

암살을 위한 계획으로 무장한 머리가 욕망으로 심장이 뚫리면서 비극적인 운명 앞에 무릎 꿇는다.

이에게 적으로 다가간 왕치아즈는 냉철하고 투철한 사람이 아니다. 아버지는 재혼하여 자신을 떠났고, 맘에 있던 광위민은 자신의 감정을 내놓지 않았고, 저항군은 그저 자신의 몸을 이용하는 도구로 사용할 뿐 자신을 아끼고 배려하지 않았다.

연극단원들은 3년 전과 똑같이 그저 멀리서 지켜보기만 했다. 결국 피 흘리고 두려움으로 위험을 감수하는 건 혼자이고 맘 하나 기댈 수 없이 외롭고 두렵기는 이와 다르지 않았다. 서로의 외로움을, 서로의 두려움을 안았고 누구보다 그들은 뜨겁게 심장까지 내놓듯 자신들을 욕망으로 채우고 또 누구보다 심장 가까이에 갔다. 유일하게 자신을 드러낼 수 있는 유일한 존재로 말이다.

 

posted by 해이든 2019. 5. 25. 00:20
감독  왕가위
''실력이란 두 가지다.

수평과 수직

지면 수평으로 쓰러지고

서 있는 자만 말할 자격이 있다.''

이렇게 말하는 자는 진화순의 마지막 제자로 불산무적 엽문이다.

왕가위 감독의 무협 액션이 어떨지 기대하면서 봤다.

아니나 다를까, 역시 왕가위감독만의 색채로 무술,사랑,인생이  입혀져 있었다.

아름다운 영상미와 가슴 안에 고이는 듯한 슬프고 쓸쓸한 선율, 무심한 듯 스치는 사랑, 홍콩 무림 고수들의 일대기를 아름답게 펼쳐 놓는다.


영춘권의 전설이고  예술의 경지에 오른 무인 엽문은 마흔 이전에 물려받은 재산으로 끼니걱정이 없었다.

인생에 사계절이 있다면 마흔 이전의 그의 삶은 봄이었다.

말이 적고, 남의 시선을 신경쓰지 않는 그의 아내 장영성(송혜교)과 평화로운 삶을 살아간다.

남방권법의 무림고수인 궁가는 대련을 통해 엽문과 무술을 겨루기 위한 도전장을 내민다.

남방과 북방의 무술을 하나로 합해 새로운 인재를 양성하기위한 그의 마지막 대련이자 도전장이었다. 

하지만  때가 좋지 않다는 만류에도 그는 자신의 수제자이며 후계자인  마삼을 통해 마지막 남방 권법을 북방에 전수하려는 의사를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마삼은 엽문이 속한 북방도장을 찾아가 거칠게  위협을 가하고 온다. 

그때 궁가가 자신의 후계자인 마삼에게  이런 말을 한다.

''칼에 왜 칼집이 있는지 아는가?''

마삼은 ''칼의 참 뜻은 죽이는게 아닌 살리는데 있다.''고 대답한다. 

''네 칼은 날카로워. 칼집속에 잘 넣어두어라!'' 엄하게 꾸짖자 마삼은 자리를 박차고 나가버린다.


드디어 궁가와 엽문의 대련이 시작되고,궁가의 마지막 대결은 무술이 아닌 생각을 겨루자고 한다.

그리고 엽문의 대답을 들은 궁가는 ''생각에서 질 줄이야!'' 라고 아름다운 패배를 인정하고서 등불이 있는 곳에 사람이 있다는 말을 건네고 물러난다.

궁가는 한번도 져 본적은 없지만 생각으로 지게된 것을 깔끔하게 인정한다. 

궁가가 무림고수의 자리를 넘기기위해 엽문과 대련하는 장면은 '이게 정말 진정한 무인의 모습이다'라는 생각에 머물게 했다.

궁가에게는 64수 절세 무공을 물려받은 외동딸 궁이가 있다. 

궁가는 자신의 딸이 의사가 되어 강호와는 무관하게 살기를 바란다.

하지만 한 번도 져 본 적이 없는 아버지가 엽문에게 진 것을 받아들이지 않고 엽문과 금루에서 대련을 한다.

궁이와 엽문의 대결장면
궁가의 말처럼 궁이는 승부욕이 강했다.

궁가가 딸인 궁이에게 한 말이 있다.

''넌 눈에 승부만 있고 세상이 없어.사람은 멀리봐야해.산을 넘어야 시야가 넓어지지.남의 장점 못 봐주고. 나의 단점을 못보면 사람을 포용못해!''

이 영화에서 가장 명장면을 뽑자면 난 단연 엽문과 궁이가 무술를 겨루는 이 장면이다. 아름다웠다.

무술의 경지가 이런 거구나!

예술이란 무대위에서 가볍게 승천하는 한쌍의 나비춤을 보는 것 같았다.

양조위와 장쯔이

그리고 그들은 이 대련으로 교감하게 된다.서로 마음을 품었던 것이라 여긴다.


1938년 일본의 공격으로 불산이 함락되고 엽문의 집이 일본군의 거주지로 변해 버린다.

그의 봄은 한순간 차거운 겨울이 된다.


일본의 공격으로 가난을 처음 겪는 그에게

먹고 사는 일이 가장 높은 산이 된다. 무술도 가난앞에서 무기력했다. 

엽문은 대일항전시기에 두 딸을 잃고 가장 넘기 힘든 삶이 생활이라는 걸 처음으로 알게 된다. 그는 모든걸 잃었다.돈도, 친구도 가족마저 잃었다. 

무술로도 넘을 수 없는 높은 산을 만난 것이다. 그리고 처음으로 돈을 벌기위해 홍콩에서 무술을 가르치게 된다.


한편 마삼은 일본에 투항하고 봉천협화회 회장이 되어 궁가를 찾아온다.

궁가는 친일파가 된 마삼에게 궁가의 것을 네게 물려줄 수 없다고 발을 들여놓지말라고 내치려고 하자 궁가와의 설전이 벌어진다.

그 끝에 궁가가 죽게 된다.

궁가는 복수하지마라는 유언을 남기고, 궁이는 복수를 하지않고는 행복해질수 없고, 궁가의 것을 뒤찾기위해 기회를 엿본다.

일본을 등에 업고 기세등등한  마삼과 기차역앞에서 만나 대련을 하여 승리를 거두고, 궁가의 것을 되찾아온다.

궁이와 마심의 대결장면

궁이와 마삼의 대결장면도 이 영화에서 의미있는 장면이었다. 그리고 궁이의 모습이 더욱 빛나보였던 장면이기도 했다.


10여년이 지나 홍콩에서 만난 궁이와 엽문,

궁이는 너무 지쳐있는 모습이었다.

엽문을 마음에 담은 적이 있다고 고백한다. 좋아하는 게 죄는 아니라며, 하지만 거기까지다.


참 왕가위스럽다. 봄인가 싶으면 겨울이고, 겨울인가 싶으면 봄이지만 봄은 너무 짧아 꽃이 피지 않는다.

왕가위감독이 표현하는 사랑은 정열적인 꽃망울을 펴보인 적이 없다.

감추고, 담고, 묻는게 다이다.

우리 응어리는 바둑판처럼 놔두자는 궁이의 말에 엽문은 당신에게 응어리가 없다. 만약 있다면 짧은 인연이라고 말한다. 뭔가 사랑이 불탔으면 하고 바랬지만 이게 끝이다. 둘의 인연은.



궁가와 궁이는 한번도 진적이 없다.

졌다면 자신에게 진것이다. 방향을 바꿀줄 몰라서 계속 걸어간 것이다. 아버지인 궁가가 가지말라는 길을 말이다.

길은 사람이 걸어 생기는 것이다.

그녀는  궁가가 말한 3가지 수련의 단계 중 자신을 봤고, 천지를 봤다고 할 수 있지만 중생을 보지 못했다고 말한다.


나는 궁가가 살아있을 때 엽문과 대련하기전 만난 무림고수의 말이 젤 가슴에 와 닿았다.

''요리할 때  불의 때를 보지.

때가 안되면 최고의 맛이 안나고, 때가 지나면 몽땅 타버리지. 사람도 똑같아.

나쁜 짓은 쉽고, 좋은 일은 어렵지. 

억지로 익으면  버리거든!''


이 영화는 기억에 남는 명장면과 가슴을 두드리는 대사가 참 많았다.

궁이와 마삼이 기차역앞에서 무술을 겨루는 장면과 궁이와 엽문이 대련하는 장면은 무술이 아닌 예술적 행위같았다.

 화려한 무술과 함께 인생의 길을 안내하는 듯한 대사들과 양조위와 장쯔이의 연기조합 또한 좋았다.

송혜교가 양조위의 아내로 나오지만 왠지 영화속에서의 존재감이 없어보여 좀 아쉬웠다.

그리고 좀 난해하고 이해가 안되는 부분은 일선천이다.

일선천과 궁이가 기차안에서 잠시 스치듯 만나는데그 다음 일선천이 궁이나 엽문과 전혀 연관성없이 혼자 뚝 떨어진 느낌으로 영화속에 들어있다. 

왜 영화속에 집어 넣었는지 잘 모르겠다. 일선천에 대한 부분이 영화속에서 배제하는 것이 더 매끄럽지 않았을까?

아마도 홍콩 무림고수를 다 표현하려는 욕심이 이런 연출을 만들어냈다거나 일선천에 대한 지나친 생략이 스토리를 매끄럽게 느껴지지 않게 만든 것 같다.

posted by 해이든 2019. 4. 1. 19:02

감독 왕 가위

왕가위감독의 화양연화

그와의 만남에 그녀는 수줍어 고개 숙였고 그의 소심함에 그녀는 떠나가 버렸다.

 

이별을 사랑의 완성품처럼 만들어 낸 영화이다.

사랑 안에는 많은 것들이 개입된다. 도덕, 열정, 가치, 행복, 현실 수많은 것들이 복합적으로 얽혀있다.

무엇에 더 가치를 두느냐에 따라 또 무엇에 더 행복의 기준을 두느냐에 따라 거리가 정해진다.

왕가위 감독이 제작한 <화양연화>는 1960년대 시대적. 사회적 배경에 따른 도덕적 관점에서 두 남녀의 사랑을 적극적이게 담아내지 않는다.

열정적인 사랑이야기를 원하는 이들에게 이 영화는 지루하고 따분하고 미지근할 것이다.

불륜영화이지만 불륜을 다루는 장면은 하나도 넣지 않았다. 불륜을 저지른 배우자들을 화면 안으로 끌어들이지 않는다.

어쩌면 자신들에게 상처 주는 그들과 똑같이 행동하고 싶지 않다는 심리와 함께 사회적 편견으로부터 외면당하고 비난받기를 두려워했을 수도 있다.

왕가위 감독은 불륜을 저지르는 차우의 아내와 수 리첸의 남편을 초반부 잠깐 뒷모습으로 존재감만 부여해 주고 영상 뒤편으로 보내버린다.

오직 수리첸과 차우만을 위해 영화는 세팅된다.

'불륜'을 아름답게 묘사하지도 않겠다는 의도와 그들에 의해 첸과 차우가 무너지거나 흔들리는 것보다 오로지 차우와 수리첸의 감정선에 몰입하게 하려는 의도일 것이다. 그래서 그들의 시선, 그들의 행동에 더 집중하게 만든 줄도 모르겠다

몽환적인 영상, 쓸쓸한 선율, 수리첸의 몸에 착 달라붙은 화려한 치파오, 신문사에 혼자 앉아 담배 피우는 차우의 모습,

좁디좁은 아파트 통로를 지나며 닿을 듯 말듯한 접촉. 국수를 사기 위해  오르내리는 어둡고 좁은 계단통로, 대사보다는 무성영화 같은 영상이 가득하다.

1962년 홍콩 그들의 첫 만남

우연히 같은 날 이사를 하게 되고 이삿짐이 섞이기도 한다. 두 사람이 지나가기에는 닿을 듯 말듯한 비좁은 복도 통로로 차우와 수리첸은 몸을 옆으로 돌려 지나간다.

그날도 차우의 아내는 바빴고, 수리첸의 남편은 출장으로 혼자 이사를 한다.

수리첸은 일본 출장으로 집을 자주 비우는 남편으로 인해 청상과부나 다름없었다. 혼자 저녁을 해결하기 위해 국수를 사려고 어둡고 가파른 계단을 오르내린다.

차우역시 아내의 늦은 퇴근으로 늦게 퇴근하거나 혼자 저녁을 해결한다. 그렇게 두 사람이 오르내리는 계단을 지나며 마주하게 되는 화면은 음악과 함께 굉장히 쓸쓸하다.

화려한 치파오를 입은 수리첸 역 장만옥

어느 날, 수리첸은 남편이 하고 있는 넥타이와 차우가 하고 있는 넥타이가 같다는 것과 차우의 아내가 가지고 다니는 핸드백과 같은 핸드백을 자신의 아내가 가지고 다니는 것으로 두 사람은 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된다. 자신의 아내와 자신의 남편이 외도를 하고 있다는 걸 확인한다.

수리첸은 보이는 것에 신경 쓰는 사람이다. 같이 숟가락 하나 더 올려 같이 저녁 하자는 것에도 쉽게 곁을 주지 않는다. 그 넘의 체면 때문에 그녀는 밤길을 걸어 나가 국수를 사들고 온다. 신세 지기 싫어하고, 남의 호의도 부담스러워하는 그런 사람이었다. 항상 체면 유지와 자존심으로 자신을 치장하는데 흐트러짐이 없다.

수리첸은 가정을 지키고 싶은 게 아니라 가정을 깨고 싶지 않아 그들의 관계를 모른 척할 뿐이다. 인정하고 싶지 않아 외면하는 것이다.

무역회사 사장이 아내 몰래 바람을 피우면서도 그럭저럭 가정을 깨지 않고 아내의 생일선물을 준비하며 꾸려가는 가정을 본 비서로서 수 리첸 또한 그럴 것이다.

자신 또한 모른 척 사회적 체면을 위해 화려한 치파오로 자신의 쓸쓸함을 가리고, 세상의 틀에 맞추어 청상과부로 보일지라도 가정의 틀을 무너트리지 않을 것이다.

 

화양연화의 양조위와 장만옥

영화에서 차우와 수리첸의 대사는 별로 없다. 두 사람은 서로 말하지 않아도 안다.

서로의 모습을 통해 배우자들의 외도를 확인했고, 서로의 모습을 통해 자신의 상처를 보고 서로의 모습을 통해 침착할 수 있다.

슬픔이 같다. 배신감 또한 같다. 나랑 똑같은 사람이 옆에 있는 것으로 위로받으며 그 두 사람은 이 상황을 차분하고 침착한 태도로 받아들이고 있다. 혼자 겪고 있는 슬픔이 아니다. 이 슬픔 안에 나와 똑같은 사람이 나와 대면하고 있다. 평정심과 냉정함을 찾아간다.

괜히 감정소비로 자신을 힘들게 하고 싶지 않았고, 삶을 흔들고 싶지도 흔들리기도 싫었다. 

결혼해 사느라고 무협소설을 쓰고 싶었던 자신의 꿈을 내려놓았는데, 아내의 외도로 인해 그런 자신의 꿈을 다시 들어 올리기로 했다. 차우는 자신을 위한 무협소설을 써보기로 하고 첸에게 같이 하자고 한다.

우리는 불륜을 저지르는 그들과 다르다고 말하는 수리첸은 모텔을 찾아가 그와 무협소설의 연재를 도운다. 사람들의 시선을 피해 사회적 망원경에서 좀 더 자유롭기 위해서 말이다.

인생의 가장 아름다운 때를 뜻하는 '화양연화'가 라디오에서 흘러나오고, 벽을 사이에 두고 등을 댄 수리첸과 차우의 영상화면은  가까이 있지만 같이 할 수 없는 사이, 도덕적 거리만큼 다른 사람들의 시선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는 걸 보여준 것 같아 쓸쓸했다. 점 뜨거웠으면 했다.

어쩌면 그들이 가장 아름다운 때라고 하던 때가 그들에게 배우자들의 외도로 가장 아프기도 했던 때이다.

부도덕한 배우자들과는 다르다고 도덕으로 옷을 입고, 모텔방에서도 첸의 방에 갇혀서도 그들은 감정을 절제하며 거리를 유지한다.

"그들과 다르다."

'우린 도덕적이야' 라고 무장되어 있는 두 사람은 자신의 내면의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다.

감독이 아마 이 둘을 갈라놓기 위해 연출된 장면 같았다.

둘이 사랑하는 것 맞아? 할 정도로 자제된 감정과 터치들 , 불륜으로 만들고 싶지 않은 그들의 표현은 서로를 향해 뜨겁지 않다고 느끼는 걸 넘어 너무 인색하다. 몸은 항상 거리두기가 있다.

모텔에서 거울을 통해 보이는 차우

 

비가 갑자기 퍼붓던 어느 날, 수리첸은 동네 골목 어귀 비를 피하고 있다. 차우는 그런 그녀를 발견하고 비를 맞고 집으로 뛰어가 우산을 들고 온다.

하지만 사람들의 시선에서 자유롭지 못한 수리첸은 그가 가져온 우산은 같이 쓰고 갈 수도, 그렇다고 차우의 우산을 혼자 쓰고 갈 수도 없었다.

사람들의 시선은 그들을 불륜으로 포장해버릴 테니까, 상자 안의 내용은 그들에게 하나도 중요하지 않을 테니까

비가 멈추거나 비를 맞거나 둘 중의 하나이지 같이 우산을 쓰고 갈 수 없는 사이이다.

 

둘이 한 방에서 밤을 지새워도, 호텔방에서 무협소설을 같이 쓸 때도 그들은 '우리만 아니면 불륜이 아니다.'

배우자들의 외도에 아파하기보다 자신들의 또 다른 삶을 만들어내려고 꿈이었던 무협소설을 쓰고 연재하는 추와 같이 읽어주며 공유하는 것으로 우리는 너희들과 다른 사랑이야. 삶도 사랑도 도덕적 토대 위에 반듯하게 올려놓는다.

출장 갔다고 친정에 갔다고 거짓말하는 그들과 다르다고 하지만 마음은 그 거리가 힘들었다.

처음 시작은 이게 아니었지만 조금씩 변해갔고,수리첸이 남편과 있다는 생각만으로 미쳐버릴 정도로 사랑하게 되었다. 불륜을 택한 배우자들과는 다르게 그녀가 지키고자 하는 가정과 도덕성을 지켜주기 위해 애썼다.

하지만 사람들은 달랐다. 그들을 도덕적으로 봐주지 않았다. 소문이 무성했다. 우린 다르다 생각했지만 그들은 그렇지 않았고 수리첸을 위해 떠나기로 한다. 차우는 싱가포르로 신문사를 옮겨간다. 그녀를 사랑하기에  이별로 담아낸다.

그들이 택한 사랑은 이별이었다. 불륜을 제거되고 아름답고 애틋한 정서만을 담아 헤어진다.

사원에서 구멍에 비밀을 말하고 봉인하는 장면

손가락 다섯 개를 깍지 낀 사랑보다 검지 손가락 끝이 닿아 물결 같은 애틋한 감정이 전해진다.

비바람에 젖는 나무보다 바다 위를 적시는 비처럼 스며들어 의식할 수 없는, 네가 나인지 내가 너인지 알 수 없고 분리하지도 못한 채 서로가 흡수되어 그저 가슴만 아는 비밀로 봉인된 사랑이다.

"옛날엔 뭔가 감추고 싶은 비밀이 있다면 어떻게 했는지? 산에 가서 나무를 하나 찾아 거기 구멍을 파고는 자기 비밀을 속삭이고 진흙으로 봉했다고 하죠. 비밀은 영원히 가슴에 묻고"

시간이 흐르고 자신들이 살았던 아파트를 찾아 창가를 바라보며 눈물짓던 수리첸, 차우는 그때를 가장 아름다웠던 때로 기억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캄보디아 앙코르와트에 가서 작은 구멍에 대고 수리첸에 대한 자신의 사랑을 말하고 그 비밀을 영원히 봉인하는 장면은 내가 이 영화에 잊을 수 없는 장면이다.

posted by 해이든 2019. 4. 1. 01:32

감독 왕 가위

왕가위 감독의 동사서독

 

왕가위 감독의 영화를 몇 편 본 사람이라면 이 감독만이 가지는 특이한 시선을 알고 있을 것이다.

느림의 미학과 대사보다는 독백으로 여백을 만들어 내는 감독이다.

처음에는 뭔 내용인 줄 모르겠고, 지루하고 복잡하다. 처음에는 관계도가 모호하고 복잡하다.

. 또 하나 이 영화는 생략이 많다.

여백이 많고 생략이 많으면 그건 독자들의 몫이다. 끝까지 정주행 해야 하는 영화이다.

 

왕가위 감독의 특유한 감성을 믿고 가야 한다.

'화양연화'를 통해 보여 준 상처와 회한처럼 사랑에 있어 적극적이지 않다. 어떻게 보면 소심하고 또 어떻게 보면 용기가 없다.

그래서 그들은 사랑에 대한 선택으로 이별을 한다.

화양연화에서 사랑하는 사람을 잡지 못하고 떠나가는 것으로 사랑보다는 그녀가 원한다고 생각하는 도덕적 가치를 지켜주는 것으로 타협을 본다.

그리고 회한에 젖어 남자 주인공은 그녀를 사랑했던 비밀을 사원에 있는 구멍 안에 속삭이고 영원히 봉인한다.

어쩌면 <동사서독>에서도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나서야 알게 된다. 떠나고 나서야 자신의 사랑을 제대로 들여다보게 된다.

자애인 역 장만옥

어려서 부모를 잃고 형을 의지해서 자랐던 서독 구양봉(장국영)은 스스로 자신을 지켜야 했다.

'천하를 얻기 위해선 여자를 버려야 하는 줄 알았지.'라고 생각했던 구양봉은 사랑하는 여인 대신 무사로서의 길을 택했다.

'거절당하기 싫으면 먼저 거절하는 게 최선이다.'이라는 그의 독백으로 그가 사랑하는 여자를 떠나온 것은 상처 받기 싫어 먼저 상처를 주는 것으로 자존심을 지킨다고 생각한 것 같다.

구양 봉이 사랑했던 여인 자애인(장만옥)은 결국 자신의 형과 혼인했다. 그녀가 혼인하는 날 구양봉은 자애인에게 같이 가자고 했지만 그녀는 거부했다.

꼭 잃고 나서야 얻으려고 하는 그를 수긍할 수 없었던 것이다.

혼자된 구양봉은 고향 백타 산을 떠나 사막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했다.

 

그리고 매년 경칩이면 동사 황약사(양가휘)가 술 마시자고 찾아온다. 그리고 황 약사는 구약봉을 만나고 나면 꼭 누군가를 만나러 떠난다.

황 약사는 구양 봉이 사랑했던 자애인을 사랑한다. 하지만 자애인은 구양봉을 생각하고 있다는 걸 안다. 그는 구양봉을 시기한다.

자애인 때문에 복사꽃을 좋아한다. 매년 복사꽃이 필 때면 그녈 만날 수 있다.

그녀가 구양봉의 소식을 궁금해해서 구양봉을 만나러 간다. 구양 봉이 있는 한 매년 그녀를 만날 수 있다.

서로 엇갈리는 사랑으로 인한 상처와 질투가 사람들을 변하게 만든다.

황 약사는 많은 사람에게 상처를 준다.

남에게 사랑받는 느낌을 알기 위해서 친한 친구의 아내와 정을 통하고, 친구였던 맹무살수(양조위)는 그로 인해 아내를 떠난다.

맹무살수는 황 약사를 다시 만났을 때 그를 죽이려 했지만 이미 그는 시력이 나빠져 그를 죽일 수 없게 되었다.

 

모룡 연(임청하)은 황 약사가 술에 취해 한 약속을 지키지 않아 상처 받고 황 약사를 죽여달라는 살인 의뢰를 구양봉에게 하게 된다.

또 모룡언은 돈을 두배로 줄 테니 황 약사를 죽이지 말라고 한다. 대신 오라버니 모룡 연을 죽여 달라고 한다.

사랑에 대한 상처로 또는 복수로 그녀는 자아가 두 개로 분열이 된 것이다.

오라버니라는 모룡연과 여동생인 모룡언은 두 개의 모습을 지닌 한 사람이다. 그리고 그 모습의 정체는 상처 받은 사람인 것이다.

'사람들은 좌절하면 자기변명을 늘어놓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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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양봉도, 황약사도 모룡 연도 맹무살수도, 맹무살수 아내 도화 삼량(유가령)도 남동생의 죽음으로 복수를 하려고 하는 완사녀(양채니)도 모두 상처 받은 사람이다.

영화에서 복사꽃은 사랑하는 여인들이다. 맹무살수(양조위)가 복사꽃이 시들기 전에 그녀를 만나러 가야 된다고 말한다.

그래서 돈을 벌려고 구약봉 밑에서 일하지만 끝내 가지 못했다. 우리는 그게 복사꽃인 줄 알았지만 복사꽃은 그의 아내 도화 삼량의 이름이었다.

구양 봉이 맹무살수의 아내가 우는 걸 보고 황 약사가 자신에게 오는 이유를 알았다고 말한다.

자애인을 사랑했기 때문에 그녀를 만나기 위해 그런 것이다. 하지만 남자들은 복사꽃을 제대로 마주해 보지 못한다.

 

이젠 옛날에는 산을 보면 산너머에 뭐가 있는지 궁금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자신을 기다려줄 여인이 없기 때문이다.

 

사랑하면서 왜 혼인하지 않았냐는 황약사의 질문에 자애인은 대답한다. '날 사랑한다고 말하지 않았다. 그 말을 듣고 싶었는데 구양봉은 해주지 않았다.

예전에 사랑한다고 말로 해야 영원한 줄 알았지만 사랑은 말하든 안 하든 차이가 없다. 사랑 역시 변하다는 것이다.

그녀는 거울을 보고 깨달은 것이다. 내가 가장 아름다웠던 시절에는 사랑하는 사람이 곁에 없었다.

움직이는 것은 오직 사람 마음이라. 깃발이 움직이는 것도 바람이 움직이는 것도 아니다. 단지 그대 마음이 움직인 것뿐이다.

 

완소녀가 당나귀와 달걀을 들고 구양봉에서 자신의 남동생의 복수를 위해 살인 의뢰를 하지만 구양봉은 달걀로는 그의 부탁을 거절하였다.

하지만 유일하게 홍칠공(장학우)은 달걀 때문에 완사녀를 도왔고, 그리고 손가락 하나를 잃는다.

이 영화에서 유일하게 신념을 지키려는 사람의 모습이다.

홍칠공은 구약봉에게 '난 당신을 닮고 싶지 않다. 달걀 하나 때문에 위험을 무릅쓰지 않겠지. 그게 당신과 나의 차이지'

구양봉은 그런 모습이 시간낭비로 느껴진다고 했지만 오직 그만이 살아있어 보인다.

다들 좌절하느라 자기변명만 늘어놓고 있지만 그만은 바람을 향해 정면으로 맞서 간다. 회피하지도 등지지도 않는다.

홍칠공을 제외한 모든 캐릭터들이 상실감으로, 질투로, 자존심으로, 변명으로 지워지지 않는 기억으로 아파한다고 생각한다.

그들이 괴로운 것은 상처 받기 싫어서 끄집어내지도 않았거나 아님 먼저 상처 줘 버린 것에 대한 기억 때문이다.

그 기억에 집착하는 것이다.

구양봉은 홍칠공이 단순하다고 생각했지만 마누라를 데리고 떠나는 뒷모습을 보고 질투가 났다.

자신에게 똑같은 기회가 있었을 때 왜 자신은 자애인을 포기했는지 모르겠다고 생각한 것이다.

황 약사는 구양봉을 만나고 그녀를 보러 가면서도 왜 구양봉에게는 그녀의 소식을 전해주지 못한 것일까? 시기이다. 질투가 우정을 외면한 것이다.

사랑받기 위한 느낌을 알고 싶어서 친구 맹무살수에게도 그의 아내 도화 삼량에게도 상처를 주었다. 친한 친구 둘을 기만했다. 질투는 결국 친구와 자신을 파괴했다.

 

자애인은 죽기 전에 '취생몽사'이라는 술을 황약사를 주면서 그에게 전해 달라고 했다.

그녀는 구양봉이 자신을 잊어주길 바랬다. 마시면 지난 일은 모두 잊는다. 인간이 번뇌가 많은 까닭은 기억력 때문이라 한다.

황 약사는 잊을 수만 있다면 매일매일이 새로울 거라고 나눠 마시자 했지만 그런 술이 있다는 걸 믿지 않았던 구양봉은 마시지 않았다.

황 약사는 혼자 마셨고, 그 해부터 그는 많은 일을 잊고 복사꽃을 좋아한 것만 기억했다.

구양봉은 사막에 오랫동안 있었으면서도 사막도 제대로 못 본 걸 알았다. 곁에 있을 땐 모른다. 아니 보려고 하지 않는다.

꼭 잃고 나서야 깨닫게 된다는 것이다. 취생몽사는 갖지는 못하더라도 잊지는 말자라고 그녀가 자신에게 던진 농담이었다.

취생몽사를 한 잔 마셨다. 하지만 잊으려고 노력할수록 더욱 선명하게 기억난다.

사랑은 이기고 지는 싸움이 아니다.

그녀를 혼자 몰래 좋아하던 황 약사는 첨부터 졌다고 했지만 그가 취생몽사를 마시고도 많은 기억을 잃고도 복사꽃만 기억한다. 취생몽사를 마신 구약봉 역시 잊을수록 더 기억은 선명해진다. 사랑에는 이기고 지고의 문제가 아니다. 사랑은 잊히지 않는다.